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베트남 민족주의 독립운동가, 판보이쩌우

1867년 오늘, 프랑스 식민 지배 아래에 있던 베트남 북부의 응에안 성에서 비범한 인물이 될 아이가 태어났다. 판보이쩌우라는 이 아이는 가난한 지식인이었던 아버지에게서 유학 경전과 고전 등을 배우며 자주독립과 애국 사상을 키웠고 37세에 프랑스에 대항하는 유신회를 결성했다. 이듬해 원조를 요청하려고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중국의 망명 정치가 량치차오(梁啓超)와 만났다.

판보이쩌우는 그의 권유에 따라 베트남 청년들을 일본에 유학시켜 인재를 양성하는 동두(동유:東遊) 운동을 벌였다. 메이지 유신에 성공한 일본을 모델로 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위협을 느낀 프랑스가 일본에 항의하자 판보이쩌우는 1909년에 일본에서 쫓겨나 타이로 향했다. 판보이쩌우는 이후 중국의 광둥에서 베트남 광복회를 조직하는 등 중국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그러나 1924년에 상하이에서 체포된 후 하노이로 압송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에 그의 감형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지자 프랑스 식민 당국은 그를 종신연금 상태로 관리했다. 그는 1940년에 73세로 숨졌다. 민족주의 혁명가였던 그의 활동은 사회주의 혁명가였던 호찌민에 의해 계승됐다. 호찌민은 판보이 쩌우와 동향 출신으로 판보이쩌우에게 친구의 아들이기도 했다. 판보이쩌우는 스물세 살 적은 호찌민과 여러 차례 만나 조국의 앞날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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