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길 위의 노랑이

지난가을부터 알게 된 녀석이 있다. 부르는 사람에 따라 '나비'가 되기도 하고 '야옹이'가 되기도 하는 그 녀석을 나는 '노랑이', 혹은 '노랭이'로 부른다. 녀석이 내게 노랭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레몬빛 바탕에 달콤한 꿀이 연상되는 짙은 노란빛 띠를 두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눈마저 노란색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노랑이는 한마디로 일명 '치즈 고양이'라고 불리는 노란색 태비 고양이의 특징을 아주 잘 갖추고 있는 치즈 고양이이자 전형적인 우리나라의 토종 고양이, 코숏(코리안 숏 헤어)이다.

처음 만나던 날, 내가 노랑이가 있다는 곳으로 향하자 녀석은 뒷모습만 살짝 보여줬다. 뛰어간 방향으로 따라갔더니 쌓인 목재 틈에서 녀석은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목청껏 울기만 했다. 낯선 곳에서 두렵지 않을까, 배는 고프지 않을까 걱정하며 먹을 것을 챙겨 다시 찾아간 다음 날, 비로소 나는 녀석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상처로 인해 까만 얼룩이 생긴 촉촉한 코와 하루를 굶어 핼쑥해진 얼굴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또랑또랑한 눈빛을 뽐내는 노랑이는 묘하게도 사람을 피해 도망치는 일반적인 길고양이들과는 달라 보였다. 오히려 '노랑아' 하고 부르면 마치 앨리샤처럼 대답을 하면서 다리에 몸을 비벼댔다. 게다가 불러도 쳐다보기는커녕 내가 직접 가야 하는 우리 집 체셔와는 달리, 노랑이는 낮잠을 자다가도 번쩍 얼굴을 들고 야옹거리며 대답하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손만 닿아도 아주 기분 좋아해 하고 행복한 고르릉거림을 멈출 줄 몰랐다.

이렇게 노랑이는 골골거리며 발라당 드러누워 애교 부리는 재주와 함께 야옹거리며 말을 건네는 말주변까지 타고났기에, 길에서 살아가는 길냥이 처지임에도 상자로 된 자신의 집과 사료, 식기까지 가지게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노랑이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들 덕분에 노랑이의 집 속은 따뜻한 보온재와 담요로 채워졌고, 틈틈이 숭늉이며 참치며 이것저것 특식까지 얻어먹게 되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던 때문일까, 아니면 타고난 게으름 때문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피둥피둥 뱃살이 올랐고 과한 뱃살로 인해 주위 사람들의 핀잔과 걱정을 들으며 강제 운동과 제한 급식을 하게 되었다. 요즘은 사료도 딱 하루에 두 번으로 제한되었고, 그마저도 딱 그릇의 3분의 2 정도만 준다. 마주칠 때마다 야옹거리며 보채는 모습이 매번 안타깝지만 그래도 노랑이의 '건강한' 몸매를 위해서라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

사실 처음엔 노랑이가 안쓰러웠다. 따뜻한 집안에서 늘 한가득 담겨 있는 사료와, 때가 되면 주는 통조림에 어디든 누워서 잘 수 있는 폭신폭신한 이불들까지 있는 우리 집 고양이들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눈비도 제대로 못 피하고 사는 노랑이의 생활이 너무나 열악하고 힘겨워 보였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생각만큼 노랑이의 삶이 힘겨운 것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길고양이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고양이의 본성을 잘 보존해가면서 가장 고양이답게 살고 있는 녀석들일지도 모른다. 예전에 지인의 집에 우연히 들어와 살게 되었던 '길고양이아가씨' 역시 한 번 외출해서 2박3일씩 돌아다니다 들어오고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부턴 아예 오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부터 집 안 생활을 한 체셔와 앨리샤와는 달리 길고양이들에게 집 안이란 '천국'이 아닌 '감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곳은 도시가 아니기에 내가 염려하는 각종 위험과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지금의 매서운 추위만 이겨내고 나면, 노랑이는 바로 지척에서 따뜻한 봄기운을 한껏 맛보며 살아갈 것이다. 바로 길냥이의 삶의 터전인 길에서 여러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들에게 예쁨도 받으면서, 거기에 더불어 길고양이의 특권인 자유로움까지 동시에 누리면서 말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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