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꿈은 무대에 설 수 있는 조그마한 힘이라도 남아 있는 그날까지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것입니다."
잘나가던 부동산 중개업을 팽개치고 지독한 가곡사랑에 빠진 이경자(70) 씨. 평소엔 성당에 다니며 평범한 모습이지만, 무대 의상을 차려입으면 열정적인 프리마돈나로 돌변한다. 대장암 판정을 받고 수술 하루 전에도 무대에 설 정도로 열정적이다. 누가 그의 끼를 만류할 수 있으랴!
◆대구 서구문화회관 가곡교실
"가장 잘 부르는 노래라기보다 즐겨 부르는 가곡은 '그리운 금강산', 언제 어디서나 가장 자신 있게 부를 수 있는 애창곡이지."
대구 서구문화회관 가곡교실 이경자 회장. 그는 일주일 내내 가곡사랑에 빠져 산다. 인생의 후반기를 가곡사랑에 걸고 있다. "젊었을 때는 열심히 일하고 이제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이 씨는 서구문화회관 가곡교실 회장을 6년째 맡고 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은 어김없이 가곡교실 사무실로 출근할 정도로 가곡교실에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이달 13일 서구문화회관 가곡교실 회원들이 발표회를 했다. 이 무대에서 이 회장은 가곡 '청산에 살리라' 독창과 가곡교실 이태영 부회장과 함께 플라시도 도밍고와 모린 맥거번이 부른 'A Love Until the End of Time'(일생에 단 한 번 오는 사랑)을 열창했다. 이 회장은 주옥같은 소프라노 실력을 인정받아 전국의 음악회에 출연요청이 쇄도한다. "이 나이에 여러 곳에서 초청해줘서 영광이지, 앞으로 얼마나 더 무대에 오를지 알 수 없지만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어릴 적 꿈은 고전무용가
이 회장의 '무대 체질'은 어릴 적부터 시작된 '예술적인 끼'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가 서문시장에서 포목점을 해 집에는 피아노와 풍금, 기타 등 값비싼 악기가 있을 정도로 풍요로운 집안이었다. 유치원 때 고전무용을 시작한 후 유명한 무용가의 꿈을 키웠다. 고교 졸업 후 미국에 공부하러 갈 기회가 있었지만 포기했다. "언니들과 동생들은 모두 미국으로 갔지만, 나는 고전무용을 하고 싶어서 혼자 한국에 남았다"고 했다. 그토록 열정적이었던 고전무용은 스물세 살 때 결혼과 함께 그만두게 됐다. 무용에 대한 열정은 10여 년 후 노래 부르기로 되살아났다.
이 회장은 "평소 노래 부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노래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가슴 깊숙이 숨어 있던 노래에 대한 열정은 뒤늦게 활화산처럼 폭발했다. 계기는 아들 학교의 예술발표회 준비를 하면서 시작됐다. "큰아들이 달성고교 재학시절 매년 학교에서 학부모와 함께하는 음악발표회를 했는데 전교 어머니회장이어서 발표회 준비를 하면서 처음 성악을 접했다"고 말했다. 평소 노래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준비과정에서 칭찬이 쏟아졌다. 그래서 자신감을 얻었다. 이를 계기로 우리 가곡에 대한 관심을 쏟게 됐다. 때마침 서구청에서 여성합창단을 창단해 단원으로 들어가 단장을 맡았다. "10년 동안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성악실력이 부쩍 늘었으며 각계로부터 타고난 목소리라고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제2의 인생은 노래와 함께
2009년 건강검진 결과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청천벽력이었다. 대구에서 기초검사를 한 후 10월 21일 서울 아산병원에서 수술날짜가 잡혔다. 수술을 하루 앞둔 10월 20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큰 연주회에 초대됐다. 마지막이라는 비장한 각오로 무대에 올랐다.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내 인생의 마지막 노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 힘을 다했다"고 회상했다. 관중들의 열화와 같은 박수 소리도, 무대를 어떻게 내려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곧바로 서울 아산병원으로 실려갔다. 그 후 10년 동안은 노래를 잊고 살았다. 당시 서중현 서구청장이 "서구 가곡교실을 추진해보라"고 권유했다. 2009년 3월 서구문화회관 가곡교실을 창단했다. 대구시 8개 구'군청 가곡교실 중 최초였다. 회장을 맡아 20명의 회원으로 출범했다. 지금은 80여 명으로 늘어났다. 서구 문화회관 가곡교실 회원들은 전국대회에서 우승할 정도로 우수한 실력자가 많다. 이 회장도 2004년 대구시 향토가곡 경연대회 대상, 2009년 전국 음악콩쿠르 금상, 달구벌축제 최우수상을 받았다. 성악가 임익선(바리톤) 교수는 "프로를 능가하는 아마추어"라고 호평한다.
이 회장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세례명은 '테레사'다. 오빠는 전 가톨릭신문사 사장을 역임한 이창배 신부이다. 성악을 하면서 건강도 되찾았다. 요즘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후 곧바로 헬스장으로 가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낮에는 사무실에서 회원들과 어울려 친분을 쌓는 등 꾸준히 회원관리를 한 후 6시에 퇴근한다.
이 회장은 "가곡은 영혼을 울리는 서정시와 같아서 노래를 부를 때 마음이 맑아지고 활력이 넘친다"며 "힘이 남아있는 그날까지 무대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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