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필자는 난초의 묘한 매력에 빠졌다. 1990년 6월, 난을 제대로 연구해보기 위해 차린 한국 춘란 전문점이 어느덧 24년이 됐다. 그 시절, 취미가 '난 기르기'라 하면 제법 고급 취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만큼 유행이었다.
필자는 야산에서 나고 사라지는 한국 춘란을 국가적 자원으로 활용할 방법을 연구하던 중 막대한 외화를 낭비하는 선물용 리본걸이 동양란을 춘란이 대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기 위해 국내외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난 연구에 몰입했다.
당시에는 여러 나라의 동양란을 취급하는 가게가 대구에만 여러 곳이 있었다. 그 시절, 규모가 큰 지역 동양란 가게에는 아시아 각국에서 수입된 수많은 명품 난을 취급했다. 난 애호가들은 벌브(나이가 들어 잎이 다 떨어지고 구슬같이 생긴 줄기)라도 하나 가지기 위해 비자금을 털어 난 가게에 몰려들었다. 중'초보들은 난 행사가 있는 날이나 고수가 운영하는 가게에 그들과 수인사를 나누거나 눈도장이라도 받으려고 북새통을 이뤘다. 필자도 난 대가들의 재배 기법을 전수받기 위해 술시중을 들며 따라다닌 적도 많았었다.
그때는 동양란이 대세였다. 동양란 전문점이 난 문화의 허브였고, 외부 문물을 접할 수 있는 정보 창구였다. 신'구를 이어주고, 프로와 아마추어를 이어주고, 대가와 초년생이 어우러져 강호의 무용담을 듣던 그런 곳이었다. 세월이 흘러 동양란 주인의 고령화와 취미활동의 다양화, 시대 변화 등으로 동양란 전문가가 감소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한국 춘란이 있었다. 한국 춘란의 부상과 수용 증가로 동양란 가게가 거의 자취를 감춘 것이다.
필자는 현재 한국 춘란을 전문적으로 재배'생산'판매'교육'연구하고 있다. 기회가 되면 제대로 갖춘 동양란 전문 농장도 개설해 명소로 만들어 동양란 애호가와 함께하고 싶다.
이대건(난초 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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