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山水)는 가장 오래된 그림 주제다. 하지만 산수를 표현하는 방식은 자연을 보는 인간의 인식 변화에 따라 변해왔다. 이상적인 자연의 모습을 선호하던 시대에는 관념산수가 유행했고 실제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시대에는 실경산수가 주류를 이루었다. 현대미술에서 산수는 여러 가지 미적 어법으로 차용되고 변형된 모습을 띤다. 이는 급변하는 시대, 새로운 산수의 의미를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반영된 결과다.
대구미술관은 새해 첫 전시로 '네오산수전'을 마련했다. 6월 1일까지 열리는 '네오산수전'은 과학기술이 범람하는 시대, 새로운 산수의 가능성과 의미를 모색해 보고 전통 산수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기획됐다.
이번 전시에는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31명의 청년'중견'원로작가들이 참여해 회화, 사진, 미디어, 설치 등 2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5월 28일까지 열리는 1부 전시는 권기수, 김윤재, 신경철, 써니킴, 안두진, 이기봉, 이세현, 이주형, 이혁준, 임택, 장종완, 최수정, 홍범, 이달 28일 시작되어 6월 1일까지 진행되는 2부 전시는 강소영, 강운, 공성훈, 국형걸, 권혁, 김영헌, 김준, 백정기, 손정은, 송수영, 이상원, 이세경, 이이남, 임옥상, 하루, 홍성도, 홍순명, 황인기 작가의 작품을 통해 현대적 의미의 산수를 조명한다.
손정은 작가는 물과 나무 등으로 이루어진 투명한 강을 통해 영원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표현했다. 이혁준 작가는 수백 개의 풍경 사진을 찢어 해체한 후 재조합해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김윤재 작가는 머리 또는 팔 등 인간의 몸에 자연을 심는 작업을 통해 자연을 인간의 도구로 만들었다.
이미지와 물질의 최소 단위인 쿼크를 조합해 '이마쿼크'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안두진 작가는 자연을 재구성한 회화 작품을 선보였다. 화면 속에 그려진 나무, 구름 등은 실재 자연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이마쿼크를 통해 패턴처럼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붉은 산수화 시리즈로 유명한 이세현 작가는 풍경을 붉게 그려 풍경을 이데올로기 화했다. 또 몽환적인 느낌의 풍경을 표현하는 이기봉 작가와 뉴미디어 아트에서 한국미술을 선도하고 있는 이이남 작가, 음식으로 풍경화를 그리는 하루 작가의 작품은 우리 시대 새로운 모습의 산수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네오산수전'에 출품된 작품들은 모두 자연을 보는 인간의 변화된 시각을 담고 있다. 오랫동안 자연은 인간의 삶과 정신, 감성을 지배해왔다. 자연환경의 리듬이 곧 인간 생활의 리듬이었고 자연과 동화되는 인간의 삶이 가장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었다. 인간의 삶과 정신을 지배하는 자연은 예술 작품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동서양 전통 회화에는 자연과 동화된 인간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고 자연과의 합일이 잘 표현되었느냐에 따라 작품의 가치가 매겨지곤 했다. 이렇듯 산수는 오랫동안 동서양미술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덕목이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변화가 발생했다. 현대인들은 더 이상 자연을 경외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었고 일상용품처럼 소비하는 대상으로 여기게 됐다. 이번 전시가 인간의 삶과 예술에 연결된 자연의 가치와 전통 산수정신을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는 이유다.
'네오산수전'을 기획한 이수균 전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현대 산수화는 더는 재현의 대상이 아닌 기술적 조작의 대상이 되었다. 또 현대 산수화에는 공통의 미학적 의미가 존재하지 않으며 작가와 관람객 사이에 존재했던 일체감 역시 사라졌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현대 산수화의 특징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053)790-3000.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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