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6시 대구 시내의 한 문화센터에서 반장 등 학급 임원 선거에 출마 예정인 20여 명의 아이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유세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속 시원한 대구탕처럼 일하겠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짝꿍을 바꿔주겠습니다." "저를 뽑아주면 신발이 닳도록 열심히 뛰어다니겠습니다." 저마다 재미있는 공약을 내세우며 외치는 광경이 어른 선거 뺨친다.
대구지역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선 새 학기를 맞아 다음 주까지 반장 및 전교회장 선거를 치른다. 반장이 하는 일은 학급회의를 진행하고 선생님의 심부름을 하는 정도. 하지만 '친구들에게 인정받는다'는 생각에 학생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대구 시내 각 문화센터와 웅변학원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문화센터들이 운영하는 발표력 교실 수강료는 3개월에 8만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하지만 일부 학부모들은 당선이 확실한 일대일 족집게 과외를 선호한다. 속성 코스를 원하는 아이들을 위해 전교회장과 반장선거 대비반을 개설한 스피치 학원도 있다. 사설 웅변학원 A(42) 강사는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가 성수기이기 때문에 예약한 많은 아이들을 위해 밤늦게까지 지도하고 있다"며 "연설문 준비와 유세 리허설은 기본이고, 출마용 사진을 전문 스튜디오에서 찍거나 유세 원고를 학원에 맡겨 대필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신모(41) 교사는 "저학년은 한 반 30~35명 중 10~15명이 반장 후보로 나서 투표에만 2시간이 걸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반장선거 과외가 인기를 누리는 것은 대입은 물론 국제중학교나 특목고 입시에서 학교 임원 경력이 중요한 '스펙'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자녀가 전교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 서미경(43'여) 씨는 "내 아이의 당선을 위해 선거 과외라도 시켜보자는 게 솔직한 부모 심정"이라고 했다. 이에 이태자 월암초등학교 교장은 "선거 과열을 막기 위해 후보 연설 때 짧은 시간에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분장 쇼와 소품 등을 이용한 정견 발표를 금지하고 있다"며 "자칫 과열돼 어른 선거의 나쁜 점을 본뜰까 걱정이지만 최대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거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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