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9일 오후 1시 35분쯤. 경찰이 '도둑이 든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대구 북구 성북로의 한 상가로 긴급출동했다. 유리창을 깨고 문을 연 흔적이 있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A(63) 씨가 안에서 나왔다. 손에는 냄비와 그릇이 있었다. 때가 낀 옷이며 훔친 물건이 예사 도둑과는 달랐다. 경찰관이 어디 사느냐 물으니 "무태교 아래 천막에 산다"고 했다.
경찰서로 데려와 조사하니 그는 전과 15범. A씨의 삶은 크고 작은 도둑질로 얼룩져 있었다. 경찰관이 "왜 이렇게 살았냐"고 묻자, A씨는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줬다.
범죄자가 되기 전 A씨는 대구 동구에서 이발소를 운영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아내, 그리고 세 아들과 가정을 꾸리며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러던 1997년 여름. 친구들과 지리산으로 야영을 간 세 아들(17'18'19세)이 갑작스럽게 불어난 계곡물에 휩쓸려 모두 목숨을 잃었다. 이 참변은 A씨를 자포자기하게 했고 하루에 소주 3, 4병을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했다.
사고 1년 전부터 별거를 하던 아내와는 완전히 갈라섰다. 홀로 다가구주택에 몸을 의탁했던 A씨는 세를 낼 돈이 없자 거리로 나왔다. 무태교 아래 움막을 친 건 2006년부터였다. 난방기 없이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겨울을 났다. 무료급식소를 찾아 끼니를 때운 날도 여러 날이 됐다. 동주민센터 정수기에서 받아온 물을 마시며 삶을 이어갔다. 최근엔 허리 통증에 협심증까지 앓았다. 건강보험이 없어 병원치료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배가 고프면 빈집에 들어가 냄비와 밥그릇을 훔쳤고, 반찬 가게에선 밑반찬도 주인 몰래 가져 나왔다. 그러면서 전과가 하나 둘 쌓였다. 경찰서에서 조사받던 A씨는 삶을 포기한 듯 보였다. 그는 약식기소돼 벌금 200만원 처분을 받았다. 이런 사정을 안 경찰이 그를 다시 찾아가 무태교 움막에서 만났다. 멍한 표정과 초점 잃은 눈동자, 헝클어진 머리, 축 늘어진 어깨는 안쓰럽기까지 했다.
대구 북부경찰서 이성일(경위) 형사3팀장은 동주민센터 사회복지사에게 연락해 도움을 청했다. 동주민센터는 A씨에게 움막생활을 접도록 북구 동변로에 쉴 곳을 마련해줬고, 생필품을 살 수 있도록 긴급생활자금(38만원)을 지원했다. 더불어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65세부터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A씨는 지난달 17일부터 공공근로(월 55만원)의 기회를 얻어 열심히 일하며 자활의지를 다지고 있다.
A씨는 도움의 손길을 건넨 이성일 팀장에게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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