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발음만으로도 새로움이 가득 묻어나는 설렘이 느껴진다. 대학 신입생들도 그렇고 신입사원들도 그렇다. 그들의 발걸음은 설렘으로 날아오를 듯 가볍다. 하지만 방방 뜨는 이들의 발걸음에 족쇄를 채우는 존재들이 있으니 바로 '선배'다. 때로는 따끔한 훈계로, 때로는 따뜻한 칭찬으로 '밀당'하며 조련한다. 선배들이야 "너희들 잘 되라"고 하는 꾸중이라지만 듣는 후배들은 힘들다. 선배에 대한 새내기들의 작심 토크와 이에 대한 선배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올해 1월 매일신문사에 입사한 수습기자 4명의 이야기부터 들어본다.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누가 썼는지는 밝히지 않는다.
◆열마디 꾸지람보다 선배의 한숨이 더 두려워요
"후…." 전화기 너머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린다. 수습생활을 시작한 후 새벽잠을 깨우는 소리였다. 지구대와 경찰서를 돌기 시작한 지 3일째 되던 날 오전 5시 전날 배정받은 지구대에 들어갔다. 웃는 얼굴과 밝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어젯밤 큰 사건, 사고 있었나요?"라고 물었다. 밤샘 근무를 하던 경찰관이 미안한 낯빛을 보이며 "기자 양반, 미안해서 어쩌지. 큰 사고 없었는데"라고 대답했다. "죄송하긴요, 아무 일 없었으면 다행이죠"라고 웃어 보이며 5시 30분에 첫 보고를 했다. "선배, 지구대에 별일 없었다고 합니다."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다. 몇 초간 답이 없다. 얼어붙은 정적을 깨는 깊은 한숨소리와 함께 "후…. 이동해"라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동하는 10분 동안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시간이 늦었나? 선배가 피곤했나?' 다음 지구대에서도 마찬가지. 다행스럽게도 큰 사고가 없었다는 경찰관의 대답에 기쁜 마음으로 보고를 했다. 이번에도 선배의 한숨 소리를 피할 수 없었다. 경찰서에 도착하고서야 한숨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경찰서 형사계에는 지구대에서 챙기지 못한 사건들이 수두룩히 깔려 있었다.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여전히 내 뒷자리 선배자리에서는 깊은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제출한 기사를 읽은 후 한숨을 크게 내쉬며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선배 모습을 볼 때면 그야말로 좌불안석이다. 오늘도 선배의 한숨 소리에 가슴은 답답하고 머릿속은 복잡하다.
◆하루 종일 고생했는데 칭찬 대신 꾸중만
한창 추웠던 어느 날 한 공장을 취재하고 오라는 선배의 지시를 받았다. 편집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시기라 모든 일에 의욕이 가득했고, 선배가 기사의 주제와 취재 범위를 알려준 덕분에 자신도 있었다. 하루 종일 고생한 후 회사에 들어와 기사를 써 냈는데 돌아오는 한마디. "하루 종일 뭘 취재한 거야?"
칭찬은커녕 "기사를 읽고 나니 독자로서 더 궁금증이 커졌다"느니 "취재에 빠진 정보가 너무 많다"느니 꾸지람만 잔뜩 듣고 말았다. 하루 종일 추운 날씨에 고생해가며 선배가 요구한 것은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엔 정말 내가 잘못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또 선배가 차라리 처음부터 취재 범위를 정확히 말해 줬다면 지금처럼 난감한 상황이 없었을 것이란 생각에 속상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처음부터 기사의 방향을 파악 못 한 나 자신이 너무 부족해 보여 이 일을 계속할 자질이 있나 혼자서 고민한 적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추가 취재가 필요한 상황. 공장 대표님이 많이 까다로우신 분이라 다시 취재 스케줄을 잡고 공장에 또 가야 한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래도 발 동동 굴러가며 추가 취재를 해 갔더니 다행히 두 번째는 합격.
그때의 경험이 항상 지시 이상으로 취재하는 습관을 들이는 데 좋은 경험이 됐지만 '선배가 시킨 것은 어떻게든 취재 현장에서 파악하고 돌아와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겨 지금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기자는 마감시간이 생명이야, 도대체 뭐 하는 거야"
"기자는 대통령이 만나자고 해도 기사 마감이 우선"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이 가슴에 크게 와 닿은 경험이 있다. 오전 9시 30분, 대구의 한 경찰서 형사계에서 신문을 읽고 있는데 휴대폰 알림창이 떴다. 캡(경찰팀장)이 나와 동기들에게 보낸 단체 문자메시지였다.
"보도자료 보냈으니 50분까지 1단짜리 기사 3개 작성해서 보낼 것. 시간 엄수."
메시지를 확인한 후 나는 급히 노트북을 열었다. "아! 뭐야. 20분 만에 3개를 쓰라니…." 혼잣말을 하며 보도자료를 확인하고 있는 내게 경찰서 형사계장이 "서장실에 좀 가자"며 다급하게 다가온다. 오전 10시에 신임 서장 취임식이 있을 예정인데, 식에 앞서 9시 50분에 출입기자단과 만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40분이 되어도 출입기자가 한 명도 오지 않은 거란다. 경무계장까지 붙어 재촉하기 시작하자 보도자료 읽으랴 대꾸하랴 밀려오는 짜증에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캡에게 전화해 상황을 말하니 "기사 마감하고 올라가라"는 단호한 어조. 50분까지 올라가겠노라고 약속하고 손가락을 바삐 움직였지만 시간은 그보다 더 빨리 흘렀다. 피가 마르는 시간. 시간이 다가오자 채근하는 형사계장. 완료된 기사는 두 개. 판단력이 흐려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서장실로 따라 올라갔다.
오전 10시 5분쯤 형사계로 돌아와 부리나케 한 건을 더 쓴 뒤 송고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외투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전화해라'라는 문자. 등줄기가 싸늘해지면서 불안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선배의 목소리. "내가 마감 지키라고 했지. 거기가 네 출입처야? 네가 경찰이야? 그딴 생각으로 하려면 당장 때려치워!"
◆골탕 먹이려는 줄 알았는데…부끄러웠어요
사수였던 선배가 대구 남구 대명동에서부터 북구 팔달교까지 다녀 보며 인근 풍경을 모두 촬영하고 시민들에게 평가를 들어 보라는 취재 지시가 떨어졌다. 얼이 빠졌다. '선배가 제대로 골탕먹이려는구나.' 20대 초반, 동성로에서 달서구 월성동 집까지 걸어간 적이 있는 나는 그 같은 일이 얼마나 무모한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틀에 걸쳐 총 7시간 정도를 쉬지 않고 걸었다. 30여 명의 시민에게 의견을 물었고, 골목 틈틈과 건물 옥상, 심지어는 찻길 한복판에서 수십 장의 사진을 찍었다. 선배가 시킨 일이니 하기는 했지만 '이게 무슨 의미인가, 문제가 심각한 샘플만 모아도 되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취재를 마친 날 선배에게 보고를 마치고, 이틀간 보고 들은 것들을 기록해 사진과 함께 전달했다. 선배는 휴대폰 사진첩을 보여줬다. "이게 작년 하반기에 내가 찍은 거야." 선배의 휴대폰에는 내가 이틀간 다닌 곳의 모습들이 똑같이 담겨 있었다. 선배가 이미 사전 취재를 했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선배는 이번에 내가 취재를 다니는 동안 같은 주제로 다른 곳을 취재하고 있었다. 선배는 이번 취재 때 찍은 사진도 보여주며 과거 사진과 비교해 설명해 줬다. "전에 내가 발견한 문제가 아직도 남아 있다니 심각하지 않아? 문제가 있는 모습들을 촘촘히 모으고 이를 최대한 이용해 큰 그림을 그려 보도하면 그 신뢰도가 훨씬 커질 거야."
나는 선배가 그 넓은 곳을 두 번이나 살폈다는 점에 놀라고, 독자들에게 문제를 알리려는 규모와 방법에 두 번 놀랐다. 사회부 기자라면 그만한 근성도, 독자들에게 문제의식을 전달하기 위해 적절한 보도 방식을 택하는 판단력도 중요하단 걸 느끼게 됐다. 일부러 무리한 취재를 시키는 것 아니냐며 선배를 원망하려 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정리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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