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얇아진 주머니·떨어진 명패…수입 적은 국선이라도 맡아야죠

위기의 엘리트 전문직, 소득절벽 변호사

대구지방법원 인근에 있는 수많은 변호사 사무실 간판들이 변호사들의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시장을 대변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대구지방법원 인근에 있는 수많은 변호사 사무실 간판들이 변호사들의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시장을 대변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높은 사회적 지위와 고소득이 보장됐던 엘리트 전문직이 언제부턴가 위기를 맞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 많은 사회'경제적 변동이 있었지만, 2000년대 접어들면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과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이 등장하면서 법률시장과 의료시장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변호사와 의사의 직업적 희소성이 떨어진 셈이다.

물론 아직 다수는 아니지만 여러 가지로 어려움에 직면한 변호사'의사들의 실상과 그 나름대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을 소개한다.

(상)대구경북 변호사들, 시베리아 벌판에 서다

(중)지역 의사들의 현주소, 빚더미 속에 허우적

(하)위기의 지역 변호사'의사! 대책은 없나?

◆1960년 38명→2014년 447명

1960년에는 38명의 변호사가 대구경북지역의 사건 수임을 전담했지만 현재는 447명이 나눠 먹고 있다. 지역의 경제력과 역동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변호사는 수요에 비해 과대배출되고 있다.(표1)

변호사들의 주머니 사정도 최악이다. 특히 대구경북지역 변호사들은 평균적인 사건 수임료가 전국 꼴찌인데다 큰 사건의 경우 서울의 대형 로펌에서 손을 대는 경우가 많아 경제적 궁핍이 가중되고 있다. 특이한 사례지만 팔순(80세)을 훌쩍 넘은 변호사가 생계를 위해 법정에 서는 사례도 있다.

지역에서 연간 10억원 이상 사건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가 손꼽힐 정도며, 5천만원도 벌지 못하는 변호사가 수두룩하다. 10억원 이상 사건 수임료를 올리는 변호사조차도 고액의 소득세, 사무실 임대료, 직원 급여를 빼고 나면 실제 손에 쥐는 돈은 2억∼3억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대구지방변호사회 석왕기 회장은 "변호사 수가 갈수록 급증하는 데 비해 지역에 돈 되는 사건은 많지 않아, 앞으로 변호사들의 고충은 가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오죽했으면, 국선 변호사가 '대인기'

올해 1월, 지역에서 국선 변호사 5명을 뽑는다는 공고가 나왔다. 40명 가까운 지원자가 몰려 경쟁률이 7대 1을 넘었다. 국선 변호사 제도가 도입된 초기에는 지원자가 별로 없어 법조계 선배들의 추천을 받아 뽑았는데 지금과는 대조적이다.

국선 변호사는 1년에 9천만원의 수입을 올리는 월급쟁이 변호사에 가깝다. 다른 사건은 수임할 수 없으며, 법원에서 배당한 사건만 변호할 수 있다. 매월 배당건수는 25건 안팎이며, 한 건당 30만원이다. 이래서 매월 750만원 정도의 수입이 생긴다. 국선 변호사가 대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은 지역 변호사들이 무한경쟁 시장에서 매월 안정적으로 이만큼의 수입도 올리기 힘들다는 방증인 셈.

대구지방법원 인근에서 12년째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는 남봉하 변호사는 "국선 변호사의 경우 매월 안정적인 수입에다 공동 사무실 임대료까지 나오기 때문에 순수익 측면에도 큰 도움이 된다"며 "변호사가 일종의 자격증으로 취급받는 시대인 만큼 변호사도 각자의 능력에 따라 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변호사의 사회적 위상도 형편없이 떨어졌다. 예전에는 국내 대기업에서 높게는 상무'부장급, 적어도 과장급까지는 보장되던 지위가 이제는 대리급까지 추락했다. 경찰 조직에서도 사법시험 출신들은 총경 바로 아래 직위인 경정에서 출발했으나, 이제는 경감으로 채용되고 있다. 공무원 조직은 더하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4급 서기관급에서 출발했는데, 지금은 잘 해야 5급 사무관급으로 대우해준다. 심지어 6, 7급 계약직 공무원이 되는 변호사도 등장하고 있다. 공기업이나 중소기업에 3천만원 안팎의 연봉을 받고 취업하는 변호사들도 종종 있다.

◆지역 로스쿨 출신 변호사 10명 중 3명만 남아

'돈이 돌지 않는 곳에 고급 인력이 무슨 필요가 있으랴?'

경북대(입학정원 120명)'영남대(70명)로 대표되는 로스쿨의 탈지역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10명 중 3명이 지역에 남았고, 나머지 7명은 수도권 등 타지역에서 변호사 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 구체적인 수치로 보면 대구경북의 경우 지난해 배출된 95명의 변호사 중 29명이 지역에 남았고, 54명은 타지역에서 개업했다.

부산대(120명)'동아대(80명)로 대표되는 부산 지역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은 10명 중 6명이 지역에 남아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항구도시인 부산은 그나마 큰 사건(밀매'밀수'마약 등 형사사건)이 많기 때문에 법조시장이 대구보다는 훨씬 크다.

앞으로 이 추세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구경북지역의 경우 매년 40∼50명의 변호사가 개업을 하지만 법률시장 자체는 더이상 커지지 않기 때문이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경우 첫 출발부터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 변호사 시험 및 연수원 성적, 특정대학 학부'학과, 집안 배경 등에 따라 대형 로펌(Law Firm)으로 스카우트되는 로열패밀리 변호사 10% 정도만 제대로 된(?) 법조인 대접을 받는다. 반면 나머지 80% 이상은 냉엄한 법률시장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지역에선 변호사들의 사건 수임료마저 춤을 추고 있다. 대체로 1건당 330만원 정도이지만 경우에 따라서 220만원, 180만원, 150만원 등 적정 가격선이 위가 아닌 아래를 향하고 있다.

기획취재팀=권성훈 기자 cdrom@msnet.co.kr 신선화 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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