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서각의 시와 함께] 애가-엄원태(1955~ )

이 저녁엔 노을 핏빛을 빌려 첼로의 저음 현이 되겠다 결국 혼자 우는 것일 테지만 거기 멀리 있는 너도 오래전부터 울고 있다는 걸 안다 네가 날카로운 선율로 가슴 찢어발기듯 흐느끼는 동안 나는 통주저음으로 네 슬픔 떠받쳐주리라 우리는 외따로 떨어졌지만 함께 울고 있는 거다 오래 말하지 못한 입, 잡지 못한 가는 손가락, 안아보지 못한 어깨, 오래 입맞추지 못한 마른 입술로……

-시집 『물방울 무덤』 창비, 2007년

시는 심상(心象)의 표현이다. 이미지(Image)라고도 한다. 사람이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통해 감각한 것을 언어로 재구성한 것이 시에서의 이미지다. 학창시절 학교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아름다운 여학생의 모습이 가슴에 남아 책을 펴도 글자는 보이지 않고 그 여학생의 모습만 떠오른 경험이 있다면, 그것이 그녀에 대한 시각심상이다. 그런 심상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 시다. 그래서 시는 이미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엄원태의 이 시는 청각심상과 촉각심상, 시각심상을 통해 그야말로 절절한 애가(哀歌)로 독자의 오관에 스민다. 화자(話者)와 청자(聽者)는 사랑하는 사이지만 서로 다른 공간에 있다. 화자는 첼로의 저음으로 노래하고 청자는 고음의 현으로 노래한다. 저음이 고음을 떠받치는 아름다운 청각심상이 제시된다. 더없이 아름다운 사랑의 이미지다.

후반부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구체적 몸짓이 제시된다. 말을 주고받는 대화, 손을 잡는 일, 어깨를 안는 일, 입맞추는 일. 인간의 가장 원초적 감각이라는 촉각심상이다. 이런 촉각적 만남은 화자에게는 불가능한 현실이다. 임과 화자는 외따로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는 애가다. 김소월의 '초혼' 이후 가장 슬픈 시다.

권서각 시인 kweon51@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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