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의 산책'은 나의 로망 중 하나였다. 기억을 되돌려보면 아마도 언니네 강아지 '소원이'를 잠시 맡아줬을 때부터 그런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비록 나의 반려견은 아니었지만, 소원이와 함께 산책한 기억은 너무나 좋았다. 목줄을 잡고 단둘이서 걸어가니 사람과 강아지 사이엔 오직 줄 하나만이 있고 그 줄엔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는 마음과, 서로를 믿는 마음, 서로에 대한 신뢰가 모두 담겨 있음이 느껴졌다. 안타깝게도 우리 집에 있는 나의 반려묘들은 함께 밖을 산책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그 이후부터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곤 하는 지인들을 보면 더욱더 부러워지곤 했다.
마침내 우리 집에 반려견 '보리'가 왔고, 드디어 내게도 함께 산책할 강아지가 생겼다. 하지만 처음 만난 보리는 너무나 작았고, 멀리까지 산책하기에는 살짝 무리일 성싶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2주째가 되던 날, 비로소 나는 보리와의 첫 산책을 시도했다. 지난 2주간 보리는 나름대로 폭풍 성장, 처음에 비해선 덩치가 제법 커졌을 뿐 아니라 이젠 집 근방에도 꽤 익숙해진 듯싶었다. 때마침 길 건너 할머니 댁에 다녀올 일이 생겼고, 어스름이 질 무렵이라 혼자 가기엔 살짝 무서운 마음이 들었던 나는 '보리와 함께 가면 되겠다' 싶었다. 보리의 줄을 내 손에 감으니 보리는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아직은 산책보다 사람이 마냥 좋은지 몇 발자국 안 가서 금세 뒤를 다시 돌아보고 내 다리에 매달리곤 했다.
그래도 종종거리는 발걸음으로 곧잘 앞을 향해 가고 있던 보리는 이내 걸음을 멈추었다. 앞에 펼쳐진 길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길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컹컹 짖어대는 동네 개의 목소리에 겁을 먹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던 길 중앙에서 망부석이 된 채 앞서 가서 줄을 당겨보아도 꼼짝 않고 내 얼굴만 바라봤다. 결국 나는 보리를 안고 남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볼일을 끝내고 집을 향해 방향을 틀며 "보리야 이제 집에 가자"고 하는 순간, 좀 전의 망부석 같던 보리는 온데간데없고 언제 겁을 먹었느냐는 듯이 집 방향으로 경쾌한 뜀박질을 시작했다. 그 걸음걸이는 겁을 먹고 도망치듯 달려가는 게 아니라 따라가는 내가 힘에 겨울 정도로 정말 신나고 즐거운 걸음걸이였다.
보리와의 산책을 마치고, 외삼촌네 '영심이'와의 산책이 떠올랐다. 영심이는 늘 함께 걷는 이의 보조를 맞춰주곤 했다. 무리해서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걸어가겠다고 고집을 피우지도 않았고, 사람이 하는 말에 열심히 귀 기울이며 맞춰주는 여유를 보였다. 특히나 오르막길에서 뒤처진 내가 '영심아 같이 가' 하고 부르면, 먼저 올라가다가도 뒤를 돌아보고는 멈추어 서서 내가 제 곁으로 갈 때까지 기다려줬다. 아마도 영심이가 그럴 수 있었던 건 나이 든 개의 여유로움과 연륜, 그리고 그의 인내심 덕분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천방지축인 보리와의 산책은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어느 순간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사실, 지금의 보리에게 영심이와 같은 나이 든 반려견의 노련함을 원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장차 우리가 함께하는 산책의 횟수가 늘어나고, 함께하는 시간이 더하고 또 더해지면, 보리도 나도 좀 더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영심이나 소원이만큼, 아니면 그보다 더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반려인과 반려견 사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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