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느리게 읽기] 그래도 양심 살아있는 열도, 인권·평화가치 지탱

또 하나의 일본/ 데이비드 스즈키, 쓰지 신이치 지음/ 양철북 펴냄

우리가 익히 아는 일본인의 모습은 이렇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개미처럼 열심히 일만 하며, 모방 능력은 뛰어나지만 독창성은 별로 없고, 고분고분하고 과하게 예의 바르다.

이런 인식과 달리 색깔 있는 목소리를 내는 일본인들이 적잖다. 남성에게 순종하던 삶의 서사에서 벗어나 온몸을 던져 전통과 문화를 지켜내는 여성들, 환경운동과 자연농법의 주역들, 양심적 지식인 및 교육자들이다. 자연'전통'인권'평화의 가치를 지키며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은 일본을 지탱하는 또 다른 힘이다.

차별에 맞서 싸워온 사람들도 많다. 우리는 일본의 인종'언어'역사'문화가 대체로 단일하다고 알고 있다. 천만에. 일본인보다는 오키나와인으로 불리고 싶어 하는 오키나와 사람들, 천민이라는 딱지를 달고 사는 300만 부라쿠민들, 핍박과 동화 정책으로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아이누'윌타'니브히(길랴크) 등 원주민들, 그리고 100만 인구 중 다수가 아직도 무국적자로 떠도는 '자이니치'(재일교포)들이 있다.

공동 저자인 데이비드 스즈키와 쓰지 신이치가 2년여 동안 일본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알아낸 일본인들의 또 다른 모습이다. 데이비드 스즈키는 일본계 캐나다인이고, 쓰지 신이치는 한국계 일본인이다. 그래서 이들은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일본과 일본인을 바라볼 수 있었고, 이렇게 일본의 다양성도 발견할 수 있었다.

유전학자인 데이비드 스즈키는 20세기 생물학의 교훈을 끌어다 설명한다. 유전적으로나 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다양성이 인류의 장기적인 생존을 가능하게 한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문화인류학자인 쓰지 신이치도 동의한다. 군국주의와 전체주의의 이미지에 갇힌 것처럼 보이는 일본에서도 크고 작은 변화가 계속 발생하고 있고, 그래서 다양성은 일본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열쇠다.

이를 통해 두 저자는 불통의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 사회에 필요한 지혜도 언급한다. 예컨대 일본을 구성하는 한 색깔인 아이누족의 전통으로 '우코차랑케'가 있다. 우코는 '상호 간에', 차랑케는 '말이 흘러나오도록 내버려두다'라는 뜻이다. 우코차랑케는 남김없이 대화를 나누며 차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누족의 전통이다. 폭력이 아닌 논리로 논쟁을 해결하는 자질, 이를 위해 며칠이라도 앉아서 계속 이야기할 수 있는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섬과 섬처럼 떨어져 살기에 소통에 미숙하고, 그래서 소통할 때 거친 질감으로 성급하게 다가가기 일쑤인 우리에게 꼭 필요한 소통 능력이 아닐까. 428쪽, 1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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