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강편지] 사람들은 마지막에 어떻게 살아갈까?

2012년 여름, 나는 대구 중심가의 한 아름다운 집에 있었다. 그 집 부엌은 꽤나 넓어 말기 폐암으로 호스피스병동에 입원해 있는 금숙 씨와 언니 금자 씨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폐암으로 호흡곤란이 있는 금숙 씨가 입원한 지 한 달 만에 하는 바깥나들이였다. 그래서 밥만 달랑 먹으면 허전할 것 같아 오카리나 연주자와 동요가수를 초대했다. 호스피스병동에서 남편을 떠나보낸 비슷한 연배인 미숙 씨한테도 연락하니, 딸과 함께 와서 식탁 차리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호스피스 봉사자인 황 선생이 이동식 산소 2통과 휠체어를 차에 싣고 금숙 씨를 모셔왔다. 모두 암이 지긋지긋할 것 같아서 항암성분이 있다고 하는 식품으로 음식을 준비했다.

나는 의사 가운을, 금숙 씨는 환자복을, 미숙 씨는 상복을, 황 선생은 분홍색 봉사자 가운을 벗었다. 그리고 우리는 소독 냄새 나는 하얀 병원이 아닌 구수한 음식 냄새가 나는 따뜻한 부엌에 모여 함께 밥을 먹었다.

모임 전날, 나는 금숙 씨에게 환자복 대신에 평상복을 입고 가자고 했다. 그런데 평상복이 한 벌도 없었다. 보통 환자들은 입원하는 날 입고 온 옷을 입원실 옷장에 보관한다. 언니인 금자 씨가 "입원하기 전에 벌써 싹 정리했더라고요. 입원하는 날 입고 온 옷도 나를 주면서 버리라고 했어요. 하여튼 희한한 애예요"하면서 몰래 눈물을 훔쳤다.

음식 차리는 것을 도우러 온 솜씨 좋은 미숙 씨는 모임이 있기 2주일 전에 남편을 떠나보냈다. 미숙 씨는 아픈 남편이 잠들면 어두운 병실 불빛 아래서 뜨개질을 했다. 큼지막한 쿠션을 떠서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죽어가는 남편 옆에서 다소곳이 앉아 뜨개질하는 작은 움직임이 목놓아 울부짖는 어떤 보호자보다 슬퍼 보였다. 미숙 씨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 안해 본 것이 없었다. 그러나 떠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 한 사람은 상실의 슬픔에서 회복하는 속도가 빨랐다.

능숙한 발마사지사인 황 선생이 다녀간 날은 환자들이 통증 없이 깊은 잠에 빠진다. 5년 전, 황 선생의 형이 내 환자였다. 젊은 나이였지만 온몸에 누런 황달이 와서 떠나갔다. 덩치 큰 황 선생이 형님 베개를 들고 꺼이꺼이 울며 임종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보호자가 호스피스 봉사자로 변하면 말하지 않는 환자의 불편함도 읽어 낸다.

죽음이 다가오면 통증이나 피로 같은 여러 증상이 많아진다. 그러나 의료적 도움으로 증상이 조절되면 살아온 모습 그대로 마지막까지 지냈다. 금숙 씨처럼 인자하게 잘 살면 죽음이란 그리 어려운 길이 아니었다. 모임이 있고 한 달 뒤, 그녀는 평화롭게 떠났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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