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주전부리

부엌 옆 다용도실에서 사료 봉지를 집어드는 뽀스락 소리가 나면, 어김없이 '도도도' 달려오는 건 앨리샤다. 비닐 봉지 소리와 사료 봉지 소리를 어쩜 그렇게 기막히게 구분해서 알아차리는지 놀라울 정도다.

사료 그릇을 들고 다용도실을 나서면 또 한 마리의 고양이가 보인다. 다소 의젓한 표정을 하고 나를 쳐다보고 있는 체셔다. 하지만 의젓해 보이는 녀석을 자세히 보면, 눈은 사료 그릇을 따라 요리조리 움직인다. 두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눈빛에 마지못해 두어 알 꺼내서 바닥에 놓아주면 녀석들은 즐거워하며 서너 일 굶은 고양이처럼 순식간에 먹어치운다.

사실 사료 그릇 속 사료는 체셔와 앨리샤의 것이 아니다. 사료 그릇에 항상 사료가 듬뿍 담겨 있는 고양이들과 달리 끼니마다 밥을 챙겨야 하는 반려견 '보리'의 사료다. 체셔와 앨리샤가 매번 사료를 깨작거려 걱정이라면, 보리는 체셔와 앨리샤가 하루 먹는 양을 한 번에, 그것도 1분 이내로 싹 다 먹어치우는 식욕을 자랑한다. 이렇게 끼니마다 주는 보리의 사료에선 고양이들의 주식과 별 차이 없는, 그저 비슷한 사료 냄새만 풀풀 풍기는데도 불구하고, 고양이들이 느끼기엔 뭔가 다르다고 생각되는지 체셔와 앨리샤는 매번 보리의 밥을 들고 나올 때마다 눈독을 들인다. 게다가 현재 보리가 쓰고 있는 밥그릇이 체셔가 어릴 때부터 줄곧 써오던 그릇이라 그런지 사료 그릇을 들고 밖으로 나설 때마다 체셔의 눈빛엔 왠지 '어~ 그거 내껀데' 하는 불만스런 표정도 함께 담겨 있는 것 같다.

물론, 강아지 사료를 고양이가 장기적으로 먹으면 안 된다고 한다. 고양이에게 요구되는 하루치 타우린 양이 많을 뿐 아니라, 타우린을 체내에서 자체적으로 생성해 내는 강아지와는 달리, 고양이의 경우엔 자체적인 타우린 생성이 되지 않기에 고양이 사료는 강아지 사료보다 타우린 함유량이 높다고 한다. 그래서 고양이가 지속적으로(물론 간식이 아닌 주식으로) 강아지 사료를 먹게 되면 실명 혹은 심근경색에 걸릴 위험이 훨씬 높아진다고 한다. 이렇게 녀석들에겐 영양가가 부족한 사료임이 틀림없음에도 불구하고 녀석들은 자꾸만 제 사료보다 보리 것에 훨씬 더 관심을 가지고 먹고 싶어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전에도 녀석들은 강아지 밥을 탐냈다. 강아지 '소원이'가 잠깐 우리 집에 와 있을 때, 녀석들은 빤히 놓여 있는 자신의 밥을 두고, 옆에 부어놓은 소원이 밥을 먹곤 했다. 평소에 이것저것 식탐이 많은 녀석들이라면 몰라도, 자신의 사료라고 해도 마음에 안 들면 며칠이고 안 먹고 버티는 체셔인 만큼 강아지 사료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 정말 묘할 따름이다.

그래도 내가 준 한두 알에 만족하고 자리를 뜨는 녀석들을 보면 뭔가 모자라거나 뭔가 배가 고파서 먹는 것은 아닌 듯싶다. 그리고 가끔 그 한두 알 얻어먹었다고 맛있는 통조림을 얻어먹었을 때처럼 입맛을 다시며 고양이 세수를 시작하는 모습엔 '강아지 사료가 그렇게 맛있을까' 싶기도 하다.

보리가 알면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만족하는 녀석들의 모습 때문에 난 매번 사료를 담은 그릇을 들고 문을 나서기에 앞서서 한두 알씩 녀석들의 얼굴 앞에 놔 준다. 녀석들이 이 주전부리에 만족을 느끼듯, 난 녀석들의 기뻐하는 모습에서 만족을 느낀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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