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서각의 시와 함께] 오래된 사원-이병률(1967년~)

나무뿌리가 사원을 감싸고 있다

무서운 기세로 사람 다니는 길마저 막았다

뿌리를 하나씩 자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원의 벽돌이 하나씩 무너져 내렸다

곧 자르는 일을 그만두었다

오래 걸려 나를 다 치우고 나면 무엇 먼저 무너져 내릴 것인가

나는 그것이 두려워 여태 이 벽돌 한 장을 나에게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문학동네, 2003.

사원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원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와도 관계를 맺으며 존재한다. 사람 인(人)자가 두 획이 서로 의지하는 형상인 것은 사람이 다른 사람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누구도 타인과 관계 맺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와 관계 맺고 사는 사람으로 하여 나의 삶이 위태로울 때가 있다. 반대로 나로 하여 나와 가까운 사람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이 시에서 벽돌을 내리는 일은 욕망을 버리는 일일 것이다. 나의 욕망을 내려놓으면 나와 관계 맺은 타인이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마음을 비운다는 말이 있다. 말은 도처에 흔히 쓰이지만 마음을 비우고 자기희생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는 이는 드물다. 세월호가 침몰될 때 다른 사람을 먼저 탈출시키고 자기는 오히려 희생된 분의 이야기가 들린다. 그런 분들로 하여 세상은 유지된다.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마하트마' 간디는 희생 없는 종교는 사회악이라 했다.

시인 kweon51@cho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