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거대한 무책임

근대 일본의 계몽사상가이자 민권운동가로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민약론'(民約論)이란 제목으로 일역(日譯)한 나카에 초민(中江兆民)은 메이지(明治) 정치체제를 '몸 하나에 머리는 많이 달린(多頭一身) 괴물'이라고 했다. 천왕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됐지만 이는 다른 한편으로는 이른바 원로(元老)나 중신(重臣) 등 초헌법적 존재의 매개에 의하지 않고서는 국가의사가 일원화되지 않는 체제였다는 뜻이다.

이런 체제에서는 누가 결단을 내리고 누가 책임을 지는지 명확해지지 않는다. 일본의 저명한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는 이를 '미코시'(神與) 메는 것에 비유하며 '거대한 무책임'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처음부터 내포하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미코시란 일본 마츠리(축제)에서 사용하는 신을 모셔오는 가마로, 크기가 매우 커서 여러 사람이 함께 든다. 이렇게 모두가 모두에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책임은 '모두의 책임'이 되고 모두의 책임은 종국에는 누구의 책임도 아니게 된다. 히로히토 천황의 전쟁 책임을 호도할 목적으로 일본 지배층이 만들어낸 '1억 총참회'는 그런 무책임의 심리구조를 압축해 보여주는 슬로건이다.

이런 무책임의 심리는 전쟁 책임에 대한 군부와 관료들의 불감증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에 대해 마루야마 마사오는 이렇게 썼다. "나치의 지도자는 2차 세계대전에 대해 그 원인이 어떻든 간에 개전의 결단에 대해 명백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에는 그 정도의 큰 전쟁을 일으키면서도 나야말로 전쟁을 일으켰노라는 의식이 지금까지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일본의 불행은 과두세력에 의해서 국정이 좌우되고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과두세력이 그야말로 사태에 대한 의식이나 자각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점에서 두 배로 늘어났던 것이다."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위안부 강제동원은 지어낸 이야기라는 일본 우익의 주장은 그런 맥락에서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일본은 그런 무책임의 탑에 또 하나의 돌을 얹으려 하고 있다. 군마(群馬)현이 다카사키(高崎)시의 현립 공원에 건립된 조선인 강제연행 희생자 추도비를 철거하라고 시민단체에 요구했다고 한다. 메이지 체제가 사라진 지 70년이 가까워 오지만 거대한 무책임은 여전히 살아 숨 쉬며 그 추한 몰골을 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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