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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선으로 이어진 '복잡한 인간사'…유리상자-아트스타 '로한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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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문화회관에서 전시된 로한의 설치작품.
봉산문화회관에서 전시된 로한의 설치작품.

봉산문화회관이 신진작가를 발굴'육성하기 위해 마련한 '유리상자-아트스타' 전시 공모에 로한 작가가 선정돼 다음 달 31일까지 전시를 갖고 있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지만 런던 유학 시절부터 설치 작업을 하고 있는 로한 작가는 '우리 인생의 특정 시점에 특별한 영향을 주고 사라진 사람이 있다면…'이라는 긴 명제가 달린 설치 작품을 출품했다. 작가의 작품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작가의 작업은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했다. 그녀는 3자 입장이 되면 잘 보이는 문제도 당사자가 되면 보이지 않는 현상에 주목해 관계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사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전시 공간인 유리상자에 설치된 조형물은 사람의 형상을 한 10개의 아이콘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악수하는 모습' '껴안은 모습'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 등의 형태로 디자인된 아이콘들은 특정 상황을 나타내기 위해 작가가 고안한 기호들이다. 10개의 아이콘들은 실타래처럼 얽힌 검은색 선들로 연결되어 있다. 공간 전체를 휘감은 검은색 선은 복잡한 상황을 은유한다. 복잡한 상황 속에는 남에게 말하기 힘든 비밀스러운 이야기(사건)가 스며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관계는 틀어지고 상황은 더 꼬이게 된다.

복잡하게 얽힌 선들이 시각적 분산을 유도하는 로한 작가의 작품은 사실 하나의 뚜렷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다 특정 사건으로 결국 헤어지는 과정이 기-승-전-결 형식으로 전개되어 있다. 좋은 관계에서 나쁜 관계로 바뀌는 상황이 10개의 이모티콘으로 형상화되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작가는 관람객들에게 자신이 제공한 이야기 구조를 따라가지 말 것을 권한다. 작가는 사람마다 처한 관계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해석도 각자의 시선으로 해주기를 바란다.

관계는 많은 작가들이 다루어 온 작품 주제다. 하지만 로한 작가의 관계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관계 맺기가 아니라 관계 끊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관계 맺는 것보다 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관계 끊기는 끝(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희망)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수많은 선들이 얽히고설킨 작품 밑에 작은 새싹들을 설치해 놓았다. 로한 작가는 "많은 사람들은 관계 끊기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하지만 막상 관계를 끊으면 그렇게 매달렸던 관계의 존재가 생각보다 가벼울 수 있다"고 말했다.

작가는 관계의 다양성을 표현하기 위해 나무, 철사, 종이 등 여러 종류의 재료를 사용했다. 하지만 작가는 검은색으로 마감 처리함으로써 재료의 이질성을 하나로 통일시켰다.

한편 작가와 함께하는 시민 참여프로그램인 '얼굴 받아쓰기'가 26일(토) 오후 3시 봉산문화회관 2층 아트스페이스에서 진행된다. '얼굴 받아쓰기'는 서로를 바라보며 그린 얼굴과 서로를 바라보며 글로 표현한 얼굴 등을 통해 내가 타인을 바라보고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를 체험하는 형식으로 꾸며진다. 초등학생 이상이면 참여할 수 있다. 053)661-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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