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미스터 점퍼

너무 높아도, 너무 낮아도 안 된다. 빠르기만 해도, 느려서도 안 된다. 쓰러지더라도 끝까지 달려야 한다. 마치 인생을 사는 금언처럼 느껴지는 이 말은 바로 허들 경기를 하는 규칙이자 요령이다.

장애물을 넘고 골인지점으로 내달려야 하는 허들은 유난히 우리 인생을 닮았다. 무조건 달린다고 해서 '장땡'이 아니다. 속도만 빠르다고, 그렇다고 넘는 데만 신경을 쓴다면 허들과 함께 나뒹구는 처참한 신세가 되어 버린다. 그렇지만 속도가 떨어지더라도, 신체적인 조건이 불리하더라도 이길 수 있는 것이 허들이다. 초반에 실수하더라도 그렇다. 10개의 허들은 10번의 기회이기도 하다. 출발이 늦어도 만회할 시간은 충분하다. 인생사에서도 평탄할 때보다 역경이 닥칠 때 더 강해지는 조직과 사람이 있다.

미스터 점퍼(Mr. Jumper). 박인규 대구은행장이 지난 3월 취임 후 자신에게 붙인 별명이다.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단다. 금융권 전체가 처한 저금리'저성장이란 허들을 넘어보자는 게 첫 번째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현장을 뛰어다니겠다는 게 두 번째다. 박 행장은 취임 후 현장을 돌며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대구은행이 처한 상황을 하나하나 넘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의지가 너무 강했을까. 초반 성적은 좋지 못했다. 첫 번째 장애물부터 넘지 못했다. 올해 검토 및 추진해 온 현대자산운용'아주캐피탈'KDB생명 등 3건의 인수에 모두 실패했다. 경기로 따지면 10개의 허들 중 3개를 넘지 못한 셈이다. 잇따른 인수시도 불발로 종합금융그룹으로 도약한다는 목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사실 자산운용사 등의 인수는 대구은행으로서는 사운을 건 시도였다. 저금리'저성장이 지속되면서 96%에 이르는 은행업 비중을 줄이는 대신 비은행업 비중(현재 2% 수준)을 2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었다.

박 행장은 취임 일성으로 2017년까지 비은행 부문 자산 비중을 현 2%에서 25%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보험사와 증권사 등을 인수해 2017년까지 자산을 60조원 규모로 늘린다는 야심 찬 계획도 내놓았다. 그러나 현대자산운용'아주캐피탈 인수 포기에 이어 KDB생명 인수까지 불발되면서 이 같은 전략에 차질을 빚게 됐다. 취임과 동시에 잇따른 금감원 특검과 연초부터 불거진 고객정보 유출 사태의 불똥까지 고려하면 심각한 내상을 입은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넘어지기만 하던 대구은행이 오랜만에 제대로 된 '점프'에 성공했다. 1일 발표된 대구은행의 2분기 실적은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2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959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26.4% 늘었고 당기순이익은 719억원으로 29.6% 증가했다. 총자산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3% 증가한 44조4천58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동기 대비 25%나 급감한 당기순이익 등 1분기 실적이 예상외로 저조했던 터라 더욱 고무적인 성과였다.

그러나 만족하기에는 이르다. 대구은행 앞에는 곳곳에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다. 더구나 은행 간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부산은행이 경남은행을 인수한 뒤 몸집을 키우고 있고 구미에 지점을 여는 등 영토 확장을 꾀하고 있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도 내년부터 힘을 합쳐 대구경북 공략에 나선다. 경쟁사들이 허들을 하나둘씩 넘으며 결승점으로 내달리는 형국이다. 출범 6개월을 맞은 박인규호가 결승점에 무사히 도달하기까지는 많은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그의 리더십이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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