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일(85) 씨는 청각장애인이다. 태어날 때부터 80년 가까이 적막 속에서 살았다. 그는 친형 소유의 양계장에서 머슴처럼 일하면서 만신창이가 됐다. 나이 들고 병든 서 씨를 받아 준 사람은 동생과 제수씨였다. 하지만 동생 영옥 씨와 제수인 김옥례 씨도 병이 들었다. 세 사람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다. 옥례 씨는 장애가 있는 시아주버님을 모시는 게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 부부가 몸이 성치 않아 아주버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해서 미안하죠. 불쌍한 아주버님이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 하는데 돌봐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세상과 단절된 삶
서 씨는 세상과 단절된 채로 살아가고 있다. 청각장애로 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학교나 사회생활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 씨는 심지어 자신의 나이조차 갖지 못했다. 열 살쯤 위의 형이 어린 나이에 죽으면서 남겨진 호적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교 근처는 가보지도 못했다. 다섯 형제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일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큰형이 운영하는 양계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가족이었지만 서 씨는 머슴과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 양계장만 덩그러니 있는 시골에서 일한 서 씨는 양계장 옆에 지어놓은 작은 방에 홀로 살며 외롭게 지냈다. 쉬는 날도 없이 평생을 일만 했다. 옥례 씨는 결혼한 뒤 아픈 아주버님을 보며 항상 안타까워했다.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죠. 안타까웠지만 우리 형편도 좋지 않았고 큰아주버님에게 반기를 들 수 없어 항상 안타까운 마음만 가지고 있었어요."
서 씨가 나이가 들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쯤 큰형은 서 씨를 내보냈다. 옥례 씨와 남편은 서 씨를 모시겠다고 나섰다. 큰형은 서 씨에게 평생을 일한 대가로 작은 집을 내줬다. 옥례 씨는 남편과 서 씨와 함께 작은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넉넉지는 않았지만 남편의 형이니 가족이라 생각하고 정성스럽게 모셨어요. 제 몸이 성할 때까지는 그랬죠."
서 씨를 모시고 사는 옥례 씨와 남편은 친구가 운영하는 작은 농장에서 함께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농사일을 하고 농작물을 떼다 팔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반찬거리도 해결했다. 옥례 씨는 항상 서 씨를 위해 국을 끓였다.
"국이 없으면 밥을 잘 안 드셔요. 그래서 항상 국을 끓였는데 힘들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내 몸이 상하면서 힘들어지긴 했지만요."
◆동생 부부도 병원 신세
넉넉지 않았지만 옥례 씨와 남편은 서 씨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2010년 옥례 씨가 폐암을 앓으면서 세 사람의 삶은 변했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부작용으로 옥례 씨는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했고 부엌에서 요리하거나 밥을 차리는 일조차 쉽지 않다. 서 씨의 동생이자 옥례 씨의 남편은 당뇨가 심해지고 어깨가 부러지면서 농사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망가졌다. 세 사람의 생활은 점점 기울어져 갔다.
얼마 전에는 서 씨가 위암 판정을 받으면서 수술을 했다. 세 사람이 서로 돌보기 힘들 정도의 생활이 계속됐다. 돌봐줄 사람은 옥례 씨의 딸 하나뿐이었다. 다행히도 착한 딸은 수시로 집에 들러 세 사람을 돌봐줬다.
하지만 딸의 인생도 평탄치는 않았다. 21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한 딸은 아이 둘을 데리고 이혼녀가 됐고, 두 아이도 건강하지 않아 딸은 계속해서 병원을 오가야만 했다. 옥례 씨는 자신이 아픈 것보다 딸이 아파하는 것 때문에 눈물지었다.
"내 딸이 무슨 팔자를 타고났는지 남편과도 헤어지고 손주들도 병원 신세를 계속 지고 있어요. 부모가 잘나서 도와줘야 하는데 오히려 기대고 있으니 미안해서…."
서 씨, 옥례 씨와 남편, 손주들 모두 몇 년간 병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을 받지만 방사선 치료 등 비보험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옥례 씨의 딸은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고 카드빚까지 져야 했다.
절망스러운 현실 앞에 옥례 씨는 자신의 아픈 몸이 원망스럽다.
"내가 다리라도 성해서 일하면 남편과 아주버님, 딸과 손주들을 이렇게까지 힘들게 만들었을까 싶어요. 소원은 다른 거 없어요. 사는 날까지 아프지 않게 살아서 딸과 손주들에게 짐이 되지 않아야죠. 내 팔자를 딸과 손주들이 이어받지 않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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