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끔찍한 이웃

몇 년 전 일본 에히메 현에 취재를 갔을 때였다. 일행이 탄 승용차가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고 있는데 앞차가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었다. 한참을 뒤따르다 약속시간 때문에 추월을 했는데 그 앞의 차들도 비슷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이상하다 싶어 교통표지판을 보니 '제한속도 40㎞'라고 적혀 있었다. 교통경찰관도 없고, 차량 통행도 많지 않은 시골길인데도 운전자들은 교통법규를 정확히 지키고 있었다. 차를 난폭하게 모는 데 익숙한 한국인들로선 혀를 내두를 만한 광경이었다. 일본인의 준법정신과 질서의식은 세계 으뜸이다. '아리가토 고자이마스'를 입에 달고 사는 그네들의 친절함과 싹싹함은 우리로선 부러워할 만한 미덕이다.

어째서 이런 '일등 국민'들이 침략전쟁과 위안부 문제만 나오면 애써 부정하고 감추려고만 할까. 각료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집단 참배하면서 인류의 기본 가치인 '휴머니즘'과 '인권'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처음에는 아베 총리 같은 극우 정치인들의 선동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일본인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보통 사람들도 비슷한 사고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됐을 때 정말 놀랐다.

일본인들이 역사와 사회를 보는 인식 구조는 우리와는 확연히 다르다. '긴 물건에는 감겨라'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 상사나 힘 있는 자에 순응하라는 말이다. '튀어나온 말뚝은 얻어맞는다'는 것도 일맥상통하는 속담이다. 개인의 생각이나 가치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이 언제나 우선한다는 뜻이다. 집단이 정한 규범을 어기면 용서 없이 응징하는 관습에서 '이지메'(집단 따돌림)라는 말도 나왔다. 유명한 불교철학자 나카무라 하지메(1912~1999)는 일본인의 사유 방법을 이렇게 정의했다. "일본인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쉽게 무시하곤 한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절대권위라든가 혹은 조직의 이익에 부합하는지의 여부만으로 선악을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과거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는 여기에 원인이 있으며 그런 위험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렇다면 일본인들은 인류의 보편성과는 동떨어진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우리가 아무리 목 높여 과거사를 반성하고 사죄하라고 해본들, '소귀에 경 읽기'와 같다. 박근혜정부가 일본 정부를 무시하고 상대하지 않더라도 그네들의 속내는 하나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일본을 제대로 알고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나라를 이웃으로 두고 있는 우리가 너무 불행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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