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인가 하면 나무이고 나무인가 하면 꽃이다. 배롱나무 이야기다. 예전에는 주로 선비의 사랑방 뜰에 심어졌으나 근래에 와서는 공원이나 길가에 더 많이 보인다. 봄꽃들이 제풀에 시들고 난 틈을 타서 여름 내내 홀로 피어난다. 무려 백일이나 붉게 핀다고 하여 백일홍이다.
배롱나무를 볼 때마다 나는 아버지가 생각난다. 모양새부터가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사랑 뜰에 알맞게 키가 너무 높지 않고 줄기도 담박하다. 봄꽃들이 설치는 호시절에는 나무인 듯 뒤편에 조용히 서 있다가 물러날 때쯤이면 민망한 듯 가지를 열어 보인다. 붉은 꽃이 보이기 시작하면 이미 여름의 중턱이다.
아버지 역시 시절에 둔감했다. 교통사고로 엄마가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응급실로 달려온 가해자에게 합의부터 덜컥 해 준 사실부터가 그러했다. 도장을 받아간 가해자는 엄마가 깨어났을 때도 얼굴 한 번 비치지 않았다. 치료비 한 푼 당연히 내어 놓지 않았다.
"다 책임져 준다 했는데~." 아버지의 변명이었다.
엄마의 병이 깊어져 중환자실에 있을 때였다. 간호사가 위급 상황에 대비해 알부민을 준비해 두라고 했다. 출근하기 전 나는 알부민을 아버지 손에 들려주며 잘 보관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며칠 후 간호사가 알부민을 급히 찾았다. 아버지는 당황하며 대기실 안을 두리번거렸다.
"가만있자, 그 사람이 오늘은 안 보이네."
알부민을 대기실의 누군가에게 빌려 준 것이었다.
"급하다고 해서~. 돈도 없다고 하고."
아버지 돌아가신 후 배롱나무를 볼 때마다 산소에 한 그루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뜻 내키지 않는 이유는 배롱나무의 변심 때문이었다. 예전 사랑방 뜰에 단아하게 서 있던 배롱나무는 공원과 거리로 나앉자 키도 훌쩍 크고 꽃도 굵어졌다. 나무의 사회학이다. 나무도 때맞추어 성장점에 자극을 받으면 용도에 맞게 진화를 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이제 더 이상 사랑방에 미련이 없는 배롱나무는 무리 지어 제 세상인 양 으스대기 시작했다.
평생을 의심하지 않고 욕심 내지 않던 무능한 아버지. 조선 중엽 어딘가쯤 뒷짐 지고 사랑방 뜰을 서성거렸으면 딱 좋았을 아버지. 나는 올해도 꽃집 앞에서 어린 배롱나무 묘목을 들었다 놓았다 하고 있다.
소진/에세이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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