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신규(가명'55) 씨의 왼쪽 팔에는 뱀같이 흉측한 핏줄들이 튀어나와 있다. 신장 투석을 받으면서 굵어진 핏줄이다. 이 핏줄뿐 아니라 반쯤 잘려나간 왼쪽 엄지발가락 등 40년 가까이 당뇨와 11년 동안 신장 장애를 앓으면서 몸 곳곳에는 상처가 남았다. 오랜 투병으로 다리 힘까지 빠져 최근에는 심하게 넘어져 대퇴부에 골절을 입어 움직이지도 못한 채 누워 있다. 하지만 그의 옆에는 돌봐줄 사람이 하나도 없다.
"가족이 넷인데 아내와 큰아들은 떠나버렸고, 그나마 살가운 작은아들은 군복무 중이에요. 평생을 질병과 싸워왔지만 스스로 밥도 못 먹을 정도의 처지가 되니 정말 혼자가 된 것 같아 마음이 아려요."
◆꿈 많던 젊은 시절
허 씨도 젊은 시절에는 꿈과 패기로 가득 찬 청년이었다. 하지만 20세에 군대에 가서 그의 인생은 바뀌었다. 군 복무 6개월이 지났을 때 훈련을 받다가 갑자기 쓰러진 그는 자신이 소아 당뇨(1형 당뇨)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때부터 매일 하루 2번 인슐린 주사를 맞고, 5번씩 혈당을 체크해야 했다. 평범한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그에겐 너무나 어려웠다.
20대 중반 아내를 만나 다시 행복한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생계는 대부분 아내가 책임져야 했지만 사랑스러운 두 아들이 생겼고, 아끼며 살아 작은 아파트도 하나 장만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당뇨 관리를 철저히 했고 건강하게 가정을 꾸려나갔다.
하지만 11년 전 다시금 그의 삶에 어둠이 드리워졌다. 당뇨 합병증으로 신장장애가 온 것이다.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 투석을 해야 했고 당뇨 치료를 위해 맞아야 하는 인슐린으로 의료비는 점점 불어났다. 아내 혼자 유지하던 가족들의 생계는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그나마 있던 아파트마저 허 씨의 의료비 때문에 팔아야만 했다.
◆긴 병에 떠나버린 아내
허 씨는 쇠약해진 몸을 추스르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 두 아들과 홀로 생계를 책임지고 병수발까지 해야 하는 아내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신장 장애를 앓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집을 떠났다.
"평소 제 성격이 까칠한데다 돈도 못 벌어오지, 평생을 안고 가야 하는 병까지 얻었으니 떠날 만도 하죠. 원망은 안 해요. 내 탓이니까…."
아내가 떠난 뒤 허 씨는 홀로 두 아이를 돌봐야 했다. 근로 능력이 없고 신장장애 2급 판정을 받아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연금 등을 받아 생활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큰아들은 엄마가 집을 나가고부터 점점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중'고등학생이 되면서는 아픈 아버지를 원망하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잦아졌다. 성인이 된 후에는 아예 집을 떠나 연락조차 받지 않았다.
"아들이 엇나간 것도 나 때문이죠. 혼도 내보고 타일러도 봤지만 아직은 20대 초반이라 그런지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상당해 연락조차 닿질 않아 마음이 쓰여요."
큰아들이 성인이 되면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집을 나가 직장을 구한 아들 때문에 기초생활수급 자격이 박탈된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인 작은아들과 허 씨는 장애연금과 복지관에서 주는 성금으로 겨우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아들에게 짐이 될까 두려운 아버지
유일한 위로는 작은아들이었다. 딸만큼이나 살갑게 아버지를 대하고, 아픈 아버지를 매일같이 걱정했다. 그 아들이 지난해 군에 입대하면서 허 씨는 홀로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학교 마치고 한 번도 다른 데 가지 않고 집에 와서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 재밌는 얘기를 저녁 내내 조잘거렸어요. 딸같이 애교가 많으면서도 든든한 아이죠."
빠듯한 삶이지만 아들이 제대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건강관리를 해오던 허 씨. 최근에는 당뇨 합병증으로 손과 발끝에 혈액이 잘 전달되지 않는 말단 신경증까지 앓으면서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고, 걷다가 넘어지는 일이 잦아졌다. 지난달에는 화장실에서 넘어져 대퇴부 뼈가 심하게 부서졌다.
"부서지고도 그냥 아픈 거겠거니 하고 지내다가 걸을 수가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러서야 병원에 왔어요."
병원에 온 그의 상태는 생각보다 더 나빴다. 당뇨와 신장 장애 때문에 부서진 뼈를 잇는 수술을 당장 할 수가 없었고, 왼쪽 엄지발가락도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결국 발가락 끝을 잘라내는 수술을 하고 한 달간 회복을 한 뒤 다시 대퇴부 골절 수술까지 했다.
수술할 때는 작은아들이 특별 휴가를 받아 아버지 곁을 지켰지만 회복은 오롯이 허 씨 홀로였다. 대퇴부 수술로 몸을 일으킬 수도 없지만 돈 걱정 때문에 간병인을 마음 놓고 쓰지도 못한다. 몸에는 온통 욕창이 생겼다. 몸이 엉망진창인데도 허 씨의 걱정은 작은아들이다. 수백만원의 병원비와 간병비가 고스란히 아들의 어깨에 짐이 될까 봐서다.
"12월에 제대하면 병원에 있는 아버지 수발도 작은아들이 할 텐데 돈 걱정까지 안겨주게 돼서 미안함뿐이에요. 저한테 남은 사람은 이제 걔 하나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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