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마담뺑덕

욕망의 늪에 빠진 현대판 '심청전'

'심청전'을 현대적으로 각색했다. 변형된 이야기는 매혹적이다. 눈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딸의 희생을 다룬 고전소설 '심청전'은 효를 주제로 한다. '마담뺑덕'은 심청에서 아버지 심학규와 새어머니 뺑덕어멈으로 초점을 이동했다. 효를 주제로 하는 가족드라마에서 욕망과 치정으로 얼룩진 여성 복수극으로의 변이가 이루어진다. 심학규는 지방으로 좌천된 문예창작과 교수로, 뺑덕어멈은 지방 소도시의 낡은 놀이공원 매표소 직원인 스무 살 처녀 덕이로 탈바꿈한다. 심청은 반항적인 여고생으로, 심청의 어머니는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우울증을 앓는 주부가 되었다.

이야기 구조를 보면 끝내주게 재밌을 것 같다. 봄날 벚꽃으로 시작하는 오프닝신, 나른하게 회고하는 중년 인텔리 심학규(정우성)의 내레이션, 싱그러운 처녀 덕이(이솜)의 봉숭아 뺨은 곧 폭발할 로맨스를 예고케 한다. 긴장감으로 충만한 흥미로운 오프닝이다. 어여쁜 처녀의 몸 안에 자리한 열정은 심심한 지방 소도시가 품기에는 너무도 뜨겁다. 덕이는 무언가 일이 생기기만을 고대한다. 어느 날, 잘생기고 지적이며 예의 바른 심학규가 덕이의 마음에 들어온다. 교수이자 유명 소설가인 학규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어 지방에서 조용히 지내게 되었다. 학규는 세련된 외모와 매너에도 불구하고 조용하고 슬퍼 보인다. 불꽃을 품은 덕이는 그를 위로해 주고 친구가 되어 주었다. 부드럽고 쿨한 남자는 넓은 곳을 동경하는 처녀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수줍게 시작한 둘의 사랑은 뜨거운 열정과 대담함으로 번지고, 덕이는 하이힐을 신고 붉은 립스틱을 바르며 여인이 되어간다. 그러나 곧 둘의 관계를 끝내야 할 때가 온다. 처녀가 유부남의 하숙방을 들락거리는 일은 심심한 마을 사람들의 재미난 추문거리가 되어가고, 학규는 서울의 대학으로 복귀하게 되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임신한 덕이는 그와의 장래를 위해 중절수술을 하지만, 돌아간 그는 소식도 없다.

그러나 슬픈 멜로드라마는 끝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8년 후, 아내의 죽음 뒤 베스트셀러 작가로 명성과 돈을 거머쥔 학규는 방탕한 생활을 영위하며, 10대 소녀 딸 심청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점점 비뚤어진다. 학규는 눈이 멀어져 가고 도박판에서 돈도 잃었다. 학규와 심청의 옆집에 이사 온 여자 세정은 이런 안타까운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 헌신한다. 이제 이야기는 스릴러극으로 바뀐다.

헌신적인 세정은 학규를 학대하기 시작하고 청이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다. 순수한 소녀 덕이에서 복수심으로 뭉친 악녀가 되어버린 세정이 학규와 청이를 상대로 한 한바탕 복수극이 완성될 즈음, 10대 소녀 청이의 반격이 시작된다.

영화는 전반부와 후반부를 분리하며 다른 이야기,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슬픈 멜로드라마인 전반부에서는 덕이가 중심이 되고, 복수 스릴러인 후반부에서는 심청이 부상한다. 처녀에서 악녀로 변해가는 이솜의 변신 연기는 자연스럽고, 정상의 배우 정우성의 과감한 노출 연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남녀의 몸과 몸이 부딪치며 뿜어내는 열기는 심심한 작은 도시와 묘하고도 아이러니하게 어울린다. '헨젤과 그레텔'(2007) 이후 절치부심한 임필성 감독은 영화적 시청각 표현 장치에 정성을 다한다. '남극일기'(2005)와 '헨젤과 그레텔'처럼 이 영화에서도 일관되게 인간의 불가능한 욕망이 초래하는 파멸과 비극을 다룬다.

시작은 창대했지만 끝은 그에 비해 폭발적이지 못하다. 덕이와 심청의 대결에서 뒤로 물러선 무기력한 학규의 구도가 흥미로운 가족극을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덕이가 학규로부터 받은 모멸감과 고통의 세기가 기대보다 약하고, 청이의 도발성은 덜 앙큼하며, 학규는 덜 비참해 보인다. 그게 모두 '그래도 둘은 사랑했다'로 매듭 짓고자 했던 감독의 순진함이 빚어낸 결과. 필자로서는 비극적인 만큼 더욱 강력하고 사악한, 그리하여 미치도록 치명적이고 매력적인 한국의 팜므파탈 탄생을 다음 기회로 미루게 생겼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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