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장 무렵 집 근처 노점에서 산 호박잎
스무 장에 오백 원이다
호박씨야 값을 따질 수 없다지만
호박씨를 키운 흙의 노고는 적게 잡아 오백 원
해와 비와 바람의 노고도 적게 잡아 각각 오백 원
호박잎을 거둔 농부의 노고야 값을 따질 수 없다지만
호박잎을 실어 나른 트럭의 노고도 적게 잡아 오백 원
그것을 파느라 저녁도 굶고 있는 노점 할머니의 노고도 적게 잡아 오백 원
그것을 씻고 다듬어 밥상에 올린 아내의 노고도 값을 따질 수 없다지만
호박잎을 사들고 온 나의 노고도 오백 원
그것을 입안에 다 넣으려고
호박쌈을 먹는 내 입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시집 『호루라기』, 문학과지성사, 2012.
흔히 시인은 가난하다고 한다. 자기 자녀가 장래 희망이 시인이라고 한다면 이를 반길 부모는 드물 것이다. 사랑하는 자식의 희망이 가난한 사람이라니 어느 부모가 수긍하겠는가? 나의 부모님도 그러하셨다.
시인은 왜 가난한가? 상식적인 셈법이 어둡기 때문이다. 산수 점수도 대개 보잘것없다. 이 시인의 셈법을 살펴보자. 호박잎 스무 장을 500원에 샀다. 그런데 시인의 셈법은 특이하다. 흙의 노고, 비와 바람의 노고, 농부의 노고, 노점 할머니의 노고를 모두 더하니 2천원은 족히 넘는다. 그 비싼 호박잎쌈을 먹자니 입이 찢어질 것 같다. 이것이 시인의 셈법이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셈법이 이러하니 어찌 가난하지 않겠는가?
우리 전통 음식 가운데 호박잎쌈은 탁월한 음식이다. 호박잎을 살짝 쪄서 손바닥 위에 놓고 그 위에 밥을 얹고 짭짤하게 끓인 강된장을 올려 두 손으로 감싸서 먹으면 눈웃음이 절로 난다. 이런 행복이 500원이라니 지나치게 과분한 게 아닌가. 먹어보면 안다. 시인의 셈법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시인


































댓글 많은 뉴스
홍준표, 검찰개혁 직격…"경찰 만능시대·범죄자 천국 우려"
가변축 화물차, 내년부터 1년마다 분해점검 받는다
민주당 '선관위 독립' 타령, 대수술 골든타임 놓쳤다
국힘 44.3%·민주 38.0%…李 대통령 지지율, 4주째 하락
"잠실시위 불법행위 동조하면 패가망신"…서울경찰청장, 강경대응 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