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에 불과 10분 못 미친 시각에 전화를 받은 사람도 있고, 자정을 훌쩍 넘긴 그야말로 '야심한' 시각에 전화벨이 울린 사람도 있다. 얼떨결에 받았다가 잠결에 수십여 분 동안 꾸중을 들은 사람도 있었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전화를 못 받았다는 사람은 다음날 출근길 내내 마음을 졸였다는 말을 털어놓기도 한다. 경북도청 공무원들 얘기다.
심야 전화벨 발신자 창에는 김관용 경북도지사 이름과 수행 비서인 한승환 사무관의 이름이 떠있다. 정말 급하면 김 지사가 직접 하고, 그래도 덜 급하다 싶으면 한 비서의 휴대전화를 통해 김 지사의 컬컬한 목소리가 와르르 쏟아져 내린다. 최근 이뤄진 한 중앙정부 및 기업 교섭 프로젝트는 발표 전 정보를 미리 획득한 김 지사가 심야 전화 지시를 통해 당초 결과를 극적으로 뒤바꾸기도 했다.
"3선이 되면 많이 느긋해지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달라진 게 없어요. 예전보다 더하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경북도청의 한 간부 직원은 "심야 전화에 대한 공포감이 솔직히 적지 않다"며 "번지점프보다 무섭다"고 했다.
초선'재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목표 의식이 떨어지고 속도감이 느려질 수밖에 없는 3선 단체장이 무슨 이유로 밤낮없이 이리도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일까?
"일단은 책임감 강한 김 지사의 성격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죠. 초선이든, 3선이 됐든 한결같은 마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일 겁니다. 그런데 다른 이유도 없지는 않을 겁니다. 바로 근처에 지붕을 이고 사는 이웃이 달라졌으니까요." 김 지사를 잘 아는 사람들의 얘기다.
내년 대구와 경북이 공동 개최하는 세계물포럼 준비와 관련, 김 지사는 최근 조직을 강화하고 직접 나서 업무를 챙겨왔다. 이 과정에서 실무자들이 꾸중을 많이 듣기도 했다.
'경북의 물산업 현장과 물포럼 의미를 직결시킬 수 있는 차원에서 포럼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것이 안 되고 있다'는 내용의 질책이라고 하지만 내면을 잘 들여다보면 '물산업 기반이 잘 이뤄진 경북은 찬밥이 됐고 대구 중심의 대회로만 알려지고 있다'는 김 지사의 불만이 노출된 측면이 크다. 대구를 적잖이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경북도청 사람들에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대구시는 비교 대상이 안 됐다. 대구는 '뜨는 일'이 별로 없었고 경북은 자주 떴다. 도지사의 인기는 고공행진을 이어갔고 상대적으로 시장의 인기는 저공비행이었다. 그러나 6'4 지방선거 이후 만들어진 새 판도는 종전의 질서에 대한 변화를 예고 중이다.
구미시장 3선'경북도지사 3선에까지 성공했던 노련한 김 지사가 이 같은 변화를 읽지 못할 리 없다. 3선 취임 후 100일 동안 '밤을 잊은 그대'가 돼 도청 직원들에게 심야 전화 데이트 신청을 연발해온 김 지사. 간부들에게 '밤을 잊은 그대'의 목소리가 반가울 리 없다.
그러나 생업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도민들의 엄중한 목소리를 그는 지난 5월의 선거 유세 현장에서 들었다. 그의 음성에는 24시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용광로 옆 근로자들의 목소리가, 밤샘 작업을 하는 도내 농어업인들의 목소리가 그대로 녹아있을지 모른다. 더욱이 그는 대구보다는 자신이 이끄는 경북이 '영원한 형님'이라는 사실도 보여주고 싶다.
밤을 잊은 그대가 보내는 심야의 음성 편지는 쉼표도, 휴일도 없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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