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

최근 언론지상에 프랑스의 경제학자 피케티가 유행이다. 사회 과학자가 쓴 신문 칼럼치고 피케티를 인용하지 않은 것이 별로 없다. 피케티는 이미 유행을 넘어 진부한 느낌마저 주고 있다. 이런 판국에 피케티를 등장시켜 글을 시작하는 것은 글의 긴장감을 늦추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다시 논급하는 이유는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운다'는 그의 문제의식이 너무나 생생한 관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운다'는 표현은 1516년 발간된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나오는'양이 사람을 먹어치운다'는 유명한 구절을 상기시킨다. 이는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농촌에서 양을 키우기 위해 그곳에서 농사짓던 사람을 빗대어 말한 것이다. 굳이 유토피아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양을 먹어치워야지, 그 반대가 되는 것은 분명히 문제적 상황이다.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운다'는 신예 역사경제학 전공자의 경고에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는 것도 마찬가지의 맥락이다. 미래가 과거를 먹어치우는 것은 지속가능한 사회의 조건으로 성립하지만, 그 반대는 공멸이다.

대구 경제를 설명하는 데 있어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운다'는 말만큼 정곡을 찌르는 것이 있을까? 대구 경제가 그동안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과거가 미래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의 권능에 의존한 개발연대 방식을 여전히 요술방망이의 신화처럼 고수하고 있다거나, 산업화 초기에 유효했던 산업정책을 지역 경제정책 수행의 유일한 전범으로 간주하고 있다거나, 지식기반 사회로의 전환을 크게 외치면서도 과거의 주력 산업의 굴레로부터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거나, 동일한 이너 서클에 속한 사람이 도시 내부의 중요한 사안에 대해 오랫동안 주도적 발언권을 행사하고 있다거나 하는 것 등이 대구 경제의 무기력한 공기속을 배회하고 있는 과거의 유령이 빚어낸 얼굴들이다.

과거의 유령이 지배하는 도시는 세습도시다. 세습도시에서는 민주주의의 원리가 관철되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는 사람과, 여기 이곳에서 앞으로 미래를 꿈꾸며 살아갈 사람이 필요한 사안을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습속과 관행에 의해 모든 것이 미리 결정되어 사람들에게 따르기를 강요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피케티의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운다'는 말은 과거의 우월한 경제적 능력과 그로 인해 축적된 자본이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피케티의 논의적 구도에서 볼 때, 대구가 세습도시가 아니라고 강력하게 항변할 수 있을까? 혹은 대구가 민주주의가 관철되는 도시라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을까?

청년이 대구를 떠나고 있다. 그들은 미래가 과거에 의해 세습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여 고향을 등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항의(voice)가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당한 방식으로 수용되지 못하는 것에 반발하며 도시를 탈주하고 있다. 청년은 대구의 미래 세대이다. 미래 세대가 대구를 떠나면 대구의 미래는 없다. 최근 대구 경제의 미래에 관한 논의가 무성하지만 청년 설계가 포함되지 않는 어떠한 구상도 과거의 논리에 포획된 조작된 허구일 뿐이다.

세습도시에는 과거의 유령이 배회하지만, 미래의 도시에는 청년이 희망을 담지하는 메시아로 나타난다. 미래 세대에게 투자하는 것은 도시에 청년과 희망을 동시에 불러 모으는 일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사실은 청년은 지금 이 도시에 어떠한 지분도 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분이 없는 자에게 발언권은 주어지지 않는다.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의 본질은 무언의 그들을 위해 과거 세대가 원래 자신의 몫이라고 여겨왔던 것을 과감하게 양보하고 포기하는 일이다.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는 과거 세대의 동의와 협조를 불가피하게 전제하고 있다.

권영진 시장은 취임사에서 대구의 미래 재도약을 위해 지역 사회 내부의 대타협을 위한 '신지역사회협약'을 체결하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 대구형 '신지역사회협약'은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의 필요성에 대한 합의가 요체가 되어야 한다. 대구에서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우는 상황의 극적인 반전을 만들어내는 것은 시대적 과업이다.

김영철/계명대 교수·경제금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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