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동 24시-현장기록 119] 그대를 사랑합니다

한 소방관은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얼마 전 있었던 구조출동의 기억 때문이었는데, 영화의 한 장면이 그때의 안타까운 출동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 소방관은 어떤 출동을 갔길래 눈물을 쏟았던 것일까?

지난 2011년 겨울 여자친구와 함께 영화관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본 영화는 만화가 강풀의 웹툰이 원작인 '그대를 사랑합니다'이었습니다. '황혼의 로맨스를 줄거리로 하겠구나' '눈물 조금 나겠구나'라고 예상하긴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눈물 나고 웃음이 나는 영화일 줄은 몰랐습니다.

부인을 일찍 여의고 감정 표현이 서툴러 무뚝뚝하기만 한 할아버지(이순재)와 고생만 하며 살아가는 예뿐이 할머니(윤소정), 치매에 걸린 할머니(김수미)와 할머니의 병간호로 고생하는 할아버지(송재호)가 출연해 일상을 사는 우리네 이야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훗날의 우리 아버지 어머니, 더 나아가서는 미래의 나와 같은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웃기도 하고 눈물도 흘렸던 영화였습니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와 닿아 감동이 전해진 것도 있었지만 영화에서 일순간 숨이 막힐 정도로 눈물짓게 한 장면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늙어서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치매 걸린 아내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장면을 보는 순간 영화를 보기 얼마 전 있었던 구조 출동이 생각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버렸습니다.

여느 때처럼 야간 근무 중이었습니다. 상황실에서 출동지령을 받고 문 개방 및 신병 확인 출동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출동 중에 신고자와 통화해서 신고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신고자의 말에 따르면 "대구에 사는 여동생이 이혼하고 아들과 둘이서 힘들게 살고 있는데 얼마 전 비관적인 문자와 함께 연락이 되질 않아 찾아오니 문이 잠겨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고했다"는 겁니다. 현장에 도착해서 신고자를 만나니 신고자는 울먹이며 "문을 어서 빨리 열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동안의 출동으로 인한 직감으로 현관문이 굳게 잠겨 있는 집 안에는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현관문을 열려니 꿈쩍도 하지 않아서 최대한 파손을 하지 않고 문을 열기 위해 위층에서 로프를 이용하여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창문이 잠긴 듯하여 조금 밀어보니 열리질 않았습니다. 구조 공구를 통해 강제로 열고 들어가려니 창문 틈틈이 테이프를 붙여 놓은 게 보였습니다. 열린 창문 사이로 매캐한 연탄가스(일산화탄소)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창문을 전부 열어 환기를 시키고 방 안으로 들어가니 침대에 사람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보였습니다. 이불을 들치니 엄마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남자아이를 꼭 끌어안고 누워 있었습니다. 우선 현관문을 열어 구급대원과 경찰을 들어오게 해서 확인하니 사망한 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였습니다.

영화에서도 치매 부인을 둔 할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자살을 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에서 방문 틈에 테이프를 붙여 가스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 뒤 부인과 같이 누워 연탄가스로 자살하는 장면이 그때 출동했을 때의 상황과 오버랩되면서 눈물을 쏟게 만들었습니다.

'마주했던 현실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으면 어린 아들과 동반자살을 택했을까?'하는 생각에 가슴이 메었습니다.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니 부모님 안부를 묻는 것 조차 뜸했던 저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구조대에 근무하며 현장출동을 나가게 되면 사람들의 사는 모습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몇 시간만 연락이 되질 않아도 위치추적 신고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오랫동안 연락이 되질 않아 외롭고 쓸쓸히 죽어 있는 사람들도 보게 됩니다. 특히 외롭게 홀로 숨진 분들을 볼 때마다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의 외로움이 얼마나 클까'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영화를 보면서 그 순간에 느낀 감정이기도 하지만 살아가면서 가족과 이웃들에 대해 더욱 신경 쓰고 살아간다면 조금 더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족들에게, 이웃들에게 한마디씩 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영화제목처럼 "그대를 사랑합니다"라고요.

오태엽(중부소방서 119구조대 소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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