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적으로 헌법은 주권자인 국민 결단의 산물이라고 정의하지만, 개헌 과정을 보면 그것은 강자의 선택 영역인 것으로 볼 수 있다. 1948년 7월 17일 제헌헌법이 공포된 후 우리는 9번에 걸친 개헌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행의 통치구조는 1987년 9차 개헌으로 인한 5년 단임제의 대통령제이다. 9차 개헌은 1980년 5공화국 헌법(8차 개헌)의 간선제 대통령제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것은 사상 최초로 여야 합의, 즉 국민의 뜻에 의한 것이었다.
1987년 개헌 후 6명의 대통령이 탄생했지만, 여야 간의 극한 대립을 피할 수 없었다. 16대 대선 2.3%, 18대 대선 1.6% 득표율 차이의 승자는 제왕적(?)인 대통령의 권력을 차지했다. 단임제의 대통령은 선거를 의식할 필요가 없으므로 때로는 청와대 깊은 곳에 숨기도 했다. 국회는 여당과 야당의 팽팽한 구도로 짜였다. 국민들은 여당에 압도적인 의석을 주지 않았다. 정부와 여당이 야당과 '협치'를 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패자는 다음 선거를 염두에 두고 승자에 대하여 사생결단식으로 저항했다. 항상 '양호상투'(兩虎相鬪)의 모습을 보였다. 두 마리의 호랑이가 싸우면 반드시 한쪽은 다친다. 나라를 위해서 싸움을 자제해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 올해 4월 이후 세월호 특별법 문제로 약 5개월 동안 국회는 마비되었다. 국회가 이성을 상실했다. 국민들은 국회를 비판했지만, 국회의 구조상 야당만으로도 국회를 마비시킬 수 있었다. 우리 헌법상 통치구조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최근에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론이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집권당의 대표가 구체적인 개헌 구상을 밝혔고, 야당도 동조하고 있다. 국민들도 현행 체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에 원내 과반인 152명이 참여하고 있고, 국회의원 중 약 70%가 개헌에 찬성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헌은 과연 이 시대 최고의 정치개혁 과제인가? 그런데 개헌 논의를 하면 통치구조 외에도 여러 가지 쟁점들이 논의될 수밖에 없다.개헌의 과정은 멀고도 험난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개헌이 경제나 민생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것이라면서 개헌에 반대했다. 과연 박근혜 대통령 임기 3년차인 내년에 10차 개헌이 가능할까?
현행 헌법에 의하면 개헌은 대통령과 국회가 발의할 수 있으므로 국회가 독자적으로 개헌안을 발의·의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반대하는 한 여당 의원들은 섣불리 개헌에 찬성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승만 정권이 붕괴한 1960년 4·19혁명 후의 3차 개헌(의원내각제)과 1987년 6·29 선언 후의 9차 개헌 이외에는 모두 현직 대통령 또는 권력을 장악한 세력이 개헌을 주도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결국 대통령이 반대하는 한 개헌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즉 국회와 대통령이 개헌에 관하여 합의하지 않는 한 개헌 논의는 정쟁의 도구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최근에 논의되는 개헌론 핵심은 어떠한 형태로든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자는 것인데, 특히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개헌을 하면 국회의 위상은 막강해진다. 그 경우 약 1년 6개월 후의 20대 총선에서 현역 다선 의원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해진다. 그들은 유권자들에게 총리 또는 장관직의 비전을 과시할 수 있는 독점적 지위를 누릴 것이다. 이 점에서 국회가 독자적으로 개헌을 추진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한 것 아닐까?
개헌론 이전에 국회는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구제 변경 문제, 국가 균형발전 방안, 지방자치 발전 방안, 양극화 해소 방안 등 실용적인 입법에 관하여 연구하면 어떨까? 개헌을 하는 경우에도 현행의 특정정당이 특정지역을 독식하는 구조를 타파하지 않는 한 우리 정치는 합리적으로 진일보할 수 없을 것이다.
국회 중심의 개헌론 이전에 국회는 불합리한 특권의 구도를 타파하기 위한 자기 개혁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공자가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알려질 만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라"(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고 말한 것을 기억하면 어떨까?
김용대<변호사·경상북도공직자윤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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