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탁구 치는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요가와 함께 탁구를 즐겼다고 한다. 요가와 책읽기 외에 동적인 취미생활로는 탁구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고 청와대 수석들은 전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취임 후 그렇게 즐기던 탁구를 끊었다. '오로지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일념에 취미생활이 웬 말이냐'는 것이다.

"엄중한 국정 책임자로서 개인 시간이나 취미를 즐길 겨를이 없다. 1초가 아깝다"고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히기도 했다. 관저생활에서도 별다른 개인 시간을 갖지 않고, 보고서를 보는 시간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지난 7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어차피 우리는 주말 없이 살아야 할 것 같다. 다 각오하시고 들어오지 않으셨나?"라고 수석들을 독려했다. 또 "휴일엔 골프를 칠 수도 있지 않느냐"는 건의에 "그럴 시간도 있으세요"라고 일축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이렇다 보니 대다수 청와대 수석들은 취미생활을 접었다. 주말과 휴일, 골프나 나들이는 물론 평일 저녁 술 한잔도 가볍게 할 수 없는 분위기이다. 수석이 대통령 방침을 따르는 상황에서 비서관이나 행정관들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대통령 해외순방 때도 마찬가지다. 수행하는 식구들은 빡빡한 일정을 챙기느라 '외국인지, 한국인지' 둘러볼 겨를이 없고, 청와대에 남은 식구들은 혹여 틈새가 생길까 봐 더 조마조마하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한마디로 개인 생활이 없는 거죠. 점심시간도 청와대 인근에 나갈라치면 들어오는 시간 챙기기에 바쁘다"고 했다.

내부적으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업무에 눈코 뜰 새가 없겠지만, 외부에 비치는 모습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경직된 분위기가 역력하다. '저렇게 경직된 분위기와 빡빡한 일정 속에서 업무 효율성과 창의성이 나올 수 있겠나'란 우려가 바로 그것이다.

박 대통령이 집권한 지 20개월가량 지났다.

대통령은 후보 때 '범죄와 사고 없는 안전한 세상' '모두가 하나 되는 따뜻한 세상' '경제민주화로 성장의 온기가 골고루 퍼지는 세상'을 그렸다. 세월호 참사나 잇단 군부대 사건을 보면서 안전한 세상은 아직 요원한 것 같고, 쌍용차나 해직언론인 문제를 두고 모두가 하나 되는 따뜻한 세상이 오고 있다고 보기엔 이른 감이 없지 않다. 경제민주화로 성장의 온기가 퍼지고 있는 지도 의문이다.

대통령은 또 '위기극복 능력, 약속 실천의 리더십, 국민대통합의 적임자'를 자임하면서 '지역균형발전과 대탕평 인사'를 약속했다.

이 같은 공약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높은 점수를 얻기는 어려울 듯하다.

기초공천제 폐지 약속과 관련해 여야의 공약 폐기에 대해 전혀 제동을 걸지 않았고, 전시작전권 전환 재연기에 대해서도 별다른 해명이나 설명조차 없다. 더욱이 후보시절 의욕을 내비쳤던 검찰 개혁이나 지역균형발전에 대해선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일하지 않는 국회가 세비를 반납'해야 한다거나 '정치권 발목 잡기로 민생법안 처리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행정부 수반이 입법부 탓을 하기보다 국민들이 엄중히 제기할 비판으로 보인다.

정부의 위기대응 능력은 안전행정부에서 '안전'을 빼야 할 만큼 믿음직스럽지 않다.

1초가 아깝도록 불철주야 국정에 매달리고 있는 청와대 비서진들이 '국가비상사태급' 세월호 사태를 맞아 국정 최고책임자 앞에서 대책회의 한 번 없이 7시간 동안 전화기와 보고서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고 하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당시 세월호 사태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었는지 되묻고 싶다.

이런 점에서 아직 집권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실망감이 적잖다.

박 대통령이 '소통, 약속 실천, 통합'의 리더십을 내세웠지만,'불통, 약속 파기, 남 탓'의 리더십으로 각인되지 않을까 우려스러운 대목들이다.

박근혜정부 60개월 중 아직 40개월이 남았다. 국민들은 경직되고 쉴 틈 없이 일만 하는 청와대보다 때론 충전도 하면서 선택과 집중을 하는 청와대를 더 원할지도 모른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 경제민주화, 검찰 개혁, 국민 대통합 등 약속을 차근차근 지켜나가 결국 국가와 민족의 근본인 국민을 위한 리더가 되길 바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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