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베를린 장벽과 DMZ

동'서 베를린을 가로막았던 베를린 장벽을 처음 만든 것은 동독이었다. 당시 동독은 사회주의 체제가 자본주의 체제보다 우수하다고 선전했다. 서독의 파시스트들이 넘어와 동독의 사회주의를 훼손하는 것을 어떻게라도 막아야 했다. 동'서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40여㎞, 서베를린을 에워싼 155㎞ 장벽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는 오판이었다. 베를린 장벽은 1989년 11월 9일 허물어지기까지 내내 동독의 자유를 억압하는 상징물이 됐다. 동독은 이 벽을 '반 파시스트 벽'이라고 불렀지만 서독은 이를 '수치의 벽'이라 불렀다. 장애물이 서 있던 28년 동안 5천여 명의 동독인들이 이 장벽을 넘으려 했고 이 가운데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어제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5년이 됐다. 이날 온종일 독일 베를린 시내는 인파로 북적였다. 장벽 붕괴 기념행사가 열린 브란덴부르크 문 주변은 물론 검문소가 서 있던 곳엔 1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몰렸다. 독일정부는 이날 장벽이 서 있던 그 자리에, 장벽과 똑같은 3.6m 높이로 15㎞에 걸쳐 7천 개의 흰 풍선을 매달아 분위기를 띄웠다.

전 세계가 이날을 기념하는 것은 '그날' 이후 지구촌이 극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동독인들이 장벽을 허문 후, 독일은 통일됐고 소련은 해체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에 드리웠던 냉전의 그림자는 사라져갔다.

이날의 주역은 독일 메르켈 총리였다. 올해로 환갑을 맞은 그녀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동독에서 성장했다. 25년 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서독으로 향하는 긴 줄이 이어질 때 그 속엔 훗날 독일 총리가 된 메르켈 자신이 있었다.

메르켈은 이날 베를린 장벽에 장미를 헌화하는 이벤트를 가졌다. 그리고 '과거 동독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그릇된 국가였다'고 회고했다. '오늘은 자유의 날인 동시에 (자유를 위해 싸우다 숨진) 희생자의 날 '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세계는 한반도에 주목했다. 모두 다음 순서는 한반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5년이 지나도록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 중이다. 북한은 3대째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그릇된 국가로 남아 있다. 북한 주민들 힘으로 허물어뜨리기엔 155마일 휴전선 철책은 너무 길고 넓고 높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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