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여섯 단어와 17만 쪽

한 사람이 헤밍웨이에게 내기를 걸었다. "여섯 단어로 소설을 써서 사람들을 울릴 수 있다면 당신이 이긴 거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헤밍웨이는 정확히 여섯 단어를 썼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E. Hemingway.

이 내기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독자의 감동을 어떻게 구분하느냐는 점이다. 북받치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과 뜨악한 표정을 짓는 사람 등 제각각일 것이다. 문학적 표현에 대한 반응은 인간의 심리작용이고 독자의 몫이기에 승패로 따질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낼 수 있다. 여섯 단어의 문장을 소설로 인정할지 가리는 것도 난제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청구에 대한 최종 변론이 25일 있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통진당은 대한민국에서 정당으로 활동해서는 안 될 반헌법적인 정당"이라며 위헌정당으로 낙인 해줄 것을 헌재에 요청했다. 작은 개미굴이 둑 전체를 무너뜨린다는 '제궤의혈'(堤潰蟻穴)까지 동원해 국가안보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해산 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통진당 이정희 대표는 "의혹과 추측만으로 정당을 해산시킬 수 없고 아무런 근거 없이 위헌정당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질 낮은 모략"이라고 반박했다.

그런데 이런 통진당 주장을 비웃기라도 하듯 법무부가 이번 청구에 제출한 자료만도 17만 쪽에 달한다. 재판관들이 이를 모두 검토하려면 초인적인 인내가 필요할 것 같다. 먼저 기가 질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여섯 단어도 아닌 17만 쪽의 자료가 9명 헌법재판관들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에 관심이 쏠린다.

헌재의 기능과 문학의 역할은 다르다. 법이 사실 관계나 합목적성을 따지는 문제라면 문학은 인간 정신의 산물이자 그 표현물이다. 법적 판단과 문학적 표현에는 감성의 간극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어떤 제도나 표현도 인간 보편의 정신과 가치를 기초로 한다는 점에서 전혀 별개의 영역은 아니다.

위헌정당 여부는 재판관들이 정당 행위에 위헌 요소가 있는지 따져보고 판단할 문제다. 통진당이 폭력혁명을 획책하고 국기를 해친 정당으로 의심하는 것도 표현의 한 방식이고, 헌법 가치를 훼손한 정당이 아니라고 보는 시각도 자유다. 다만 17만 쪽의 자료가 주는 중압감이 재판관들의 몫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것이라는 점에서 참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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