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회고록의 진실과 거짓

'거대제국 소련은 왜 망했나?' 1991년 소련 붕괴 후 세계 각국의 학자들을 괴롭힌 물음이다. 그 대답은 그야말로 '백가쟁명 백화제방'(百家爭鳴 百花齊放)이었다. 이러한 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1996년 무려 700쪽에 이르는 고르바초프 회고록이 발간되자 세계는 환호했다. 제국 붕괴의 비밀을 선명하게 말해줄 것이란 기대에서.

그런 기대는 곧바로 실망으로 바뀌었다. 방대한 분량이지만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었다. 그가 공산당 서기장으로 재직한 7년 동안 벌어졌던 많은 역사적 사건은 누락하거나 소홀히 다뤘고 자화자찬과 책임회피가 심하다는 평을 들었다. 특히 정적이었던 보리스 옐친에 대한 험담은 넘쳐나 그를 '위선자' '약탈자' '권력의 화신' '주정뱅이'라고 욕한 것은 물론 그가 1991년 8월 보수파의 쿠데타에 맞서 싸운 사실에 대해서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내 잘못은 숨기고 남의 공은 폄훼하는 전형적 수법이다. 냉전사(冷戰史) 전문가인 존 루이스 개디스가 "부피만 클 뿐 별 내용은 없다"고 혹평한 이유다.

같은 이유로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閑中錄)도 진실성을 의심해볼 만하다. 한중록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참변을 중심으로 한 자신의 한(恨) 많은 삶에 대해 쓴 회고록'이란 것이 정설이지만 재야 역사학자 이덕일 씨의 판단은 다르다. 한중록은 혜경궁 홍씨가 사도세자의 죽음에 깊이 연루된 자신의 집안을 지키려고 남편을 정신병자로 만들고 영조를 비정한 아버지로 부각시켜 사도세자의 죽음의 비밀을 은폐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목적에서 썼다는 것이다.

이런 상반된 평가는 회고록을 읽을 때 직면하는 곤경을 말해준다. 내용 중 어디까지가 객관적 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자화자찬이거나 책임 회피인지를 일반인은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회고록 특히 정치인의 회고록은 주의 깊은 독서를 요구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이 발간된 이후 지배적인 평가는 부정적이다. 특히 자원외교나 4대 강 사업 등 재임시설 '치적'에 대해서는 자화자찬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자원외교만 해도 엄청난 혈세를 탕진하고도 성과는 거의 없어 국정조사를 앞두고 있다. "자서전은 수치스러운 면을 드러낼 때만 신뢰할 만하다. 자신을 좋게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어떤 삶이든 내면으로부터 볼 때는 단지 일련의 실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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