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해의 창] 국제시장 그리고 죽도시장

영화 '국제시장'이 관객 1천30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까지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덕수'(황정민 분)를 통해 우리 시대 아버지를 그리고 있다. 눈물 훔치며 힘들었던 그때 그 시절, 오직 가족을 위해 굳세게 살았던 그가 1'4 후퇴 때 어머니와 함께 정착한 삶의 현장이 부산 국제시장이다. 그곳에서 수많은 '덕수'들이 치열한 삶을 살았던 곳이다.

부산에 국제시장이 있다면 포항에는 그에 못지않은 죽도시장이 있다. 포항시 죽도동 부지면적 약 14만8천760㎡, 점포 수 약 1천200개에 달하는 포항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이다.

1950년대에 갈대밭이 무성한 포항 내항의 늪지대에 노점상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초반만 해도 죽도시장은 포항 구항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포항시 북구 대신동의 북부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였다. 당시 북부시장은 포항시청과 인접해 있고 어물전이 발달해 만선의 어부들이 선창가에서 한 잔 술에 흥겨운 노랫가락을 쏟아내던, 낭만 어린 곳이었다. 고기 비린내와 함께 돈 비린내가 물씬 풍기던 포항경제의 중심지였다.

열세였던 죽도시장이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1967년 7월 정부가 송도동 건너편 형산강변 드넓은 갈대밭에 포항종합제철소의 부지를 선정한 것이다. 건설이 본격화하면서 포항을 비롯해 경북 동해안 일대 젊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모여들었다. 또한 이들을 수용할 주택들이 죽도동 인근 동인 해도동에 잇따라 지어졌다. 포항시의 용틀임에 죽도시장도 함께 호흡하기 시작했다. 1968년 포항제철이 창립됐고 1969년 10월 죽도시장번영회가 정식으로 설립됐다. 1973년 포항제철이 본격 가동하면서 죽도시장도 포항'포항시민의 역동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중심지로 우뚝 섰다.

죽도시장은 외지사람들이 포항을 찾을 때 꼭 한 번 찾는 '포항의 얼굴' 같은 존재다. 다양한 상품은 물론 과메기'대게 등 좋은 먹거리까지 사람들을 반긴다. 또한 새벽부터 늦게까지 시장의 아지매 아제들이 어시장의 펄펄 뛰는 고기처럼 넘치는 생동감을 사람들에게 선사한다. 최근 10여 년 사이 죽도시장은 건물의 재정비와 주차장 확보 등으로 새로운 면모를 갖췄고 포항 운하의 개통으로 포항을 찾는 사람들에게 더욱 친숙한 모습으로 다가서고 있다.

하지만 죽도시장이 몇 년 새 경기침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1997년 IMF'2008년 금융위기도 잘 넘겼지만 최근의 철강건설경기 불황으로 인한 포스코의 위축은 예사롭지 않다. 포항 경기가 만만찮다고도 한다. 그러기에 더욱 '포항의 얼굴' 죽도시장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야 할 시점이다. 지금도 죽도시장에는 수많은 '덕수'들이 가족들을 위해 치열한 새벽을 열고 있다.

포항 김대호 기자 dh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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