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500" 부르자마자 "1700"…2시간 만에 2400만원 '껑충'

한밤 분양권 전매 현장 가보니…견본주택 앞 떴다방 손님 쟁탈전

최근 청약 당첨이 발표된 달서구의 한 견본주택 앞에서
최근 청약 당첨이 발표된 달서구의 한 견본주택 앞에서 '떴다방'이 아파트 당첨자를 대상으로 전매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구 아파트 분양시장이 '돈 놓고 돈 먹기'의 투기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2011년 말부터 아파트 분양시장이 살아나 분양권에 높은 웃돈이 붙자 너도나도 주택 청약에 뛰어들고 있어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과열 양상으로 흐르는 아파트 분양 시장에 제동을 걸어줘야 할 브레이크가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 당첨만 되면 앉아서 수천만원을 만질 수 있어 너도나도 '묻지마 청약'에 나서고 있다"고 귀띔했다.

◆분양권 전매 야시장 가보니

최근 찾은 대구 달서구의 한 아파트 견본주택 앞. 자정이 다가오자 두꺼운 외투를 껴입은 이들이 떼 지어 모였다. 무리 진 틈 사이로 노트와 볼펜을 든 이들이 분주히 오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한 남성이 슬그머니 다가와 기자의 허리를 '쿡' 찔렀다.

"몇 동, 몇 호예요? 지금 눈치작전이 치열하죠. 치고 빠지야 됩니데이." 청약 당첨이 벌써 두 번째라는 그는 선심을 쓰듯 충고(?)한 후 무리로 섞였다.

20분쯤 지났을까.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금세 300명으로 불었고 본격적인 분양권 거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떴다방들이 서로 손님을 낚아채려다 실랑이가 일었다. 싸우는 틈에 운 좋게 어부지리로 싼값에 분양권을 매입하는 이들도 있었다.

한 40대 여성이 '1천500'이라고 운을 떼니 옆에 있던 남성은 '1천700'이라고 받았다. "이 아저씨 독하네 독해. 2천100 줄게." 찰나에 700만원이 올랐다.

오전 1시쯤이 되자 좁은 주차장엔 100명이 더 불었다.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인파 속을 비집고 '2천300만원 준다'는 떴다방 업주를 따라나섰다. 길 건너편 짙은 선팅을 한 승합차에 다다르자 문이 열렸다. 가운데 의자를 떼어 내고 둥근 테이블을 설치한 내부가 마치 부동산 상담소처럼 느껴졌다. 떴다방 업자는 즉석에서 수표 2천400만원과 영수증을 건넸다. 어렴풋이 '부적격 시 환불'이라는 특약이 눈에 띄었다. 아파트 청약 당첨을 확인한 지 2시간 만에 2천400만원을 버는 순간이었다. 동행한 당첨자는 "1년을 해도 모을 수 없는 돈을 단 몇 시간 만에 번다는 게 좀 씁쓸하다"고 했다.

◆대구 분양시장 분양권 전매가 8할

대구의 아파트 신규 분양 열기가 전국 최고 수준이지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분양권 전매에 따른 차익을 노린 투자수요가 대부분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대구에서 분양된 아파트의 전매 건수는 전체 분양 가구 수에 육박한다는 것.

지난해 말 50대 1의 청약 경쟁률을 보였던 중구 수창동 대구역센트럴자이(1천5가구)의 경우 최근까지만 해도 한 대형 부동산 사이트에 580건의 전매 매물이 올라왔다.

달서구 월성동 협성휴포레는 연말까지 분양 가구 수(996가구)의 93.1%인 927건이 전매됐다. 지난해 분양한 북구 침산동 삼정그린코아의 분양권 전매 건수도 분양가구 수(578건)의 85%에 달하는 491건으로 파악됐다.

침산화성파크드림 역시 분양 가구 수(1천202가구)의 74.6%인 897건이 전매됐다. 동일 분양권이 2차례 이상 거래되는 중복 건수를 감안하더라도 실수요자의 비율은 높지 않다는 것이 부동산업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평균 청약 경쟁률이 171.8대 1을 기록한 대구역유림노르웨이숲(296가구)은 프리미엄 3천만∼5천만원의 호가로 80여 건이 등록됐고, 수성구 파동 수성아이파크(455가구)도 프리미엄 1천만∼2천200만원으로 200여 건이 등록됐다.

이진우 부동산자산관리연구소 연구위원은 "전매차익을 고려한 투자수요를 빼면 지금의 대구 분양 시장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떴다방 등의 난립으로 분양 시장이 교란돼 있다"고 했다.

글 사진=임상준 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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