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마음이다. 울릉도 주민들은 "봉사가 반드시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준 이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10월 '자랑스런 울릉군민상'을 수상한 김연옥(68) 씨다.
그는 지난 30여 년간 봉사현장에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봉사와의 첫 만남은 1980년대 초 위암이 찾아온 이후부터다. "30대에 위암이 왔어요. 병을 고치고 나니까 감사하며 살게 됐지요."
1980년대는 지금처럼 복지여건이 좋지 않았다. 김 씨는 국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찾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돕고 살았다. 굶는 사람 있으면 밥을 해서 먹이고, 거동이 불편한 이들에겐 빨래 등을 도와주는 식이었다.
그렇다고 김 씨가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남을 도울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1971년 서울살이를 접고 울릉도에 들어오면서 공사장 막일을 했다. 1980년대 초반부터 20년간은 오징어 건조공장에 다니며 자녀 셋을 대학 공부까지 시켰다. 1980년대 중반엔 알음알음 알게 된 이혼가정 아이 셋을 3년간 집에서 키우며 보살폈다.
그런 중에도 이웃 어른을 어머니 삼아 30년 가까이 모시기도 했다. "반찬을 해다 드리고 말벗을 해드리는 정도였어요. 딸이 여럿 있었지만 육지에 나가 있어 저를 많이 의지하셨는데 2년 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 밖에도 그는 2006년부터 2012년까지 7년간 울릉군 새마을부녀회와 울릉군 여성단체협의회를 이끌며 홀몸노인과 저소득층 등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에 솔선수범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엔 심의위원 전원 만장일치로 '자랑스런 울릉군민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앞선 2011년엔 대통령 훈장도 받았다. 울릉도 여성으로서 대통령 훈장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최근엔 이런 일이 있었다. 울릉도에 여러 가지 물건을 팔러 온 장애인 여성 2명을 우연히 길에서 만났다. 그냥 보내기가 안쓰러워 1만원어치의 물건을 샀다. 이 여성은 김 씨에게 싼 방을 소개시켜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김 씨는 이들을 이틀 동안 자신의 집에서 재우고 음식을 대접했다. 이 이야기는 그의 모습을 본 한 여성단체 회원의 입을 통해 알려지며 주민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줬다.
이처럼 그의 봉사는 생활에 가깝다. 인터뷰 요청에 별것 아니라며 수차례 손사래를 쳤던 김 씨는 울릉도 주민들에게 '닮고 싶은 어른'으로 꼽힌다.
"자신이 가진 능력이 무엇이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 나눠주는 것이 참봉사인 것 같습니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하겠지만, 몸으로 하는 봉사는 건강이 허락한다면 평생을 하고 싶습니다."
울릉 김도훈 기자 hoon@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