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허남문 초대전-4월 17일까지 대구대박물관

험난한 삶, 꿋꿋하게 피워 올린 생명력

20년 이상 한지 작업에 매진해 온 허남문 작가 초대전이 4월 17일(금)까지 대구대 박물관에서 열린다.

허 작가에게 '닥'(楮)은 생활의 일부다. 부친이 한지 공장을 운영한 관계로 어릴 때부터 닥과 함께 자랐다. 그가 한지 작업을 한 이유도 닥이 어느 것보다 친숙한 재료이기 때문에 조형에 대한 자신감이 은연중에 묻어난 결과다.

경주가 고향인 허 작가는 품격 있는 신라시대 문화 향기를 내면 깊숙이 받아들이며 태고의 신화와 전설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이는 훗날 '생명력'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형성하면서 창작 의욕을 작동시키는 요인이 됐다. 1990년대 중반, 허 작가가 관심을 기울인 주제는 '시원'(始原)이었다. 이 무렵 그가 제작한 '원시주의'(Primitivism) 연작은 신화와 전설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는 인간을 비롯해 새, 물고기, 말 등을 상징하는 기호들을 다양한 색상의 닥지로 형상화하는 작업에 몰입했다. '원시주의' 연작에는 허 작가가 자기 작업의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점·선·면의 형태적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복잡한 사물의 외관을 단순화시켜 조형의 가장 기본적 요소인 점·선·면으로 표현했다.

2000년대 중반, 허 작가는 다소 엄격한 기하학적 형태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형태로 이행했다. 유연하고 따스한 느낌을 전해주는 이 시기 작업에서 주목할 점은 단색화적 경향이다. 그는 회색, 흰색, 진한 갈색 등 염색된 단색의 닥을 사용해 작품을 제작했다. 강화 스티로폼 표면에 무수히 칼질을 한 뒤 그 위에 젖은 닥 펄프를 얹고 손으로 매만져 작품을 만들었다. 일종의 캐스팅 기법을 원용한 것으로 형을 즉물적으로 떠낸다는 점에서 부조와 관계가 깊다.

허 작가는 이번 초대전에서 단색의 캐스팅 부조회화를 집중적으로 선보였다. 흑과 백의 거대한 화면을 대비시킨 '융합' 대작은 광활한 대지 또는 일망무제로 펼쳐진 바다의 수평선을 연상시킨다. 길이 10m에 달하는 또 하나의 대작 '생명력' 역시 흑과 백의 두 패널을 잇댄 것으로 매우 광활한 느낌을 준다. 허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흑'백 외에도 빨강 또는 청색이 지배하는 작품도 공개했다. 짙은 청록 바탕에 붉은색 원이 화면을 가득 채운 작품 '융합'을 보면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는 느낌이 든다. 허 작가는 "점·선·면을 기초로 형태를 상징화하여 표현했다. 표현 형태들은 서로 어울리며 또 다른 조형언어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조형언어들을 통해 험난한 삶을 꿋꿋하게 살아가는 생명력을 표출했다"고 말했다. 053)850-5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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