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개통을 앞두고 포항이 고민에 빠졌다. 말 그대로 관광객들이 잠깐 즐기고 다시 돌아가는, '반나절 생활권'의 딜레마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포항은 교통시설 발달을 통해 문화'관광'경제 전반의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방문객들이 머물 숙박시설만 생각하면 포항 사람들은 머리가 아프다. 내연산과 포항운하, 호미곶, 영일대해수욕장 등 우수한 관광 인프라를 가지고도 특급호텔이 턱없이 부족한 이중적 모습이 그 이유다.
◆'잠잘 곳이 없어서' 행사 유치 빨간불
포항의 숙박 인프라 부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각종 행사유치에 이 문제는 항상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실례로 포항시는 2017년 한국에서 열리는 FIFA(국제축구연맹) 주최 U-20 월드컵축구대회 중 일부 경기 유치전에 뛰어들었으나 숙박시설 마련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FIFA는 이번 경기의 일부를 국내 6개 도시에 분산하기로 하고 2만~4만 석 규모 경기장, 호텔 반경 30㎞ 이내 훈련장 4개, 3성급 이상 호텔 2개 등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포항시는 지역 스틸러스 구단과 협력해 스틸러스 전용 구장 및 훈련장 등을 확보했으나, 숙박시설은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다. 조건에 부합하는 호텔은 특1급인 필로스호텔(131실)이 전부인 탓에 경쟁 중인 타 지역보다 미흡하다는 분석이다. 현재 포항과 경쟁하고 있는 곳은 서울'대전'수원'울산'인천'제주'천안'전주 등이다.
월드컵 외에도 최근 문경에서 추진 중인 세계군인체육대회 역시 트라이애슬론 등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일부 경기의 경우 포항 개최 방안이 숙박시설 문제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포항에서 경기를 치르고 숙박은 인근 경주 보문단지의 특급호텔들을 이용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항시 관계자는 "포항권 몇몇 비즈니스호텔 등을 이용하는 방법도 제시했으나 각국 장성급의 경호문제 등으로 인해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준비는 우리가 하고 이익은 타지역에 뺏기는 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특급호텔 유치 거품만
현재 포항에서 정식 호텔이라 부를 수 있는 곳은 북구 죽도동의 필로스호텔과 남구 지곡동의 포스코국제관(60실) 정도다. 이 중 필로스호텔만 특1급 판정을 받아 특급호텔로 분류된다. 포스코국제관은 관광호텔이 아니기 때문에 따로 등급을 매기지 않는다.
이처럼 부족한 숙박 인프라 탓에 포항은 예전부터 특급호텔 유치에 목말라 했다. 포항운하 설립 초기단계부터 롯데 등 유명 호텔체인과 협력을 시도했으나 아직까지 뾰족한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대신 궁여지책으로 일반모텔 시설을 업그레이드해 비즈니스모텔로 활용하는 수준이다.
때마침 지난 2013년 ㈜비지에이치 코리아가 영일대해수욕장 인근에 160실 규모의 특2급(예정) 호텔 '베스트웨스턴' 건립을 발표하면서 포항의 갈증이 다소 해소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호텔이 대규모 상가복합건물과 함께 묶여진 탓에 주변 상인들의 반발로 사업승인조차 받지 못했다. 당초 이달 말 개관예정이었던 이 호텔은 채용인력 75명 중 4명이 고용불안으로 퇴사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먹거리'볼거리 많아도 잠은 딴 데서?
포항시에 따르면 현재 포항지역을 찾는 내외국인 관광객은 연간 약 1천600만 명. 2000년대 이후 과메기 등 지역 특산물 홍보, 포항운하 개관 등 여러 가지 호재 속에서 다소 늘어난 수치다. 그러나 이들 관광객들은 포항에서 숙박하지 않고 인근 경주나 영덕 등으로 대부분 빠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포항이 해당 도시를 방문하기 위해 찾는 '목표관광도시'보다는 타 지역에서 휴식을 즐기기 전 잠시 들르는 '거점관광도시'로 전락했다는 뜻이다.
지난달 4일 포항시 창조도시추진위원회 산하 해양관광육성 분과위원회는 '환동해 글로벌 해양관광도시 조성'을 위한 회의를 열었다. 이날 24개 전략사업을 확정했는데, 이 중 첫 번째가 바로 '체류형 해양관광을 위한 관광인프라 구축'이었다. 이를 위한 선결과제로 참석자들은 모두 특급호텔 유치를 손꼽았다.
앞서 한국은행 포항본부 역시 지난 1월 'KTX포항 노선 개통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방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포항의 숙박시설 부족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은행 측은 이 보고서에서 "교통시설 발달로 포항은 지역 간 통학, 업무통행, 당일 여행, 기업 및 일자리 수 증가 등을 통한 지역활성화가 전망된다"면서도 "수도권에 비교열위에 있어 역외유출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대응책으로는 '역세권 내에 국제 수준의 비즈니스 회의 기능을 갖춘 특급호텔 건립 등을 통해 경제'관광 복합산업 유치'를 제시했다.
◆이렇게 해보자
포항의 숙박 인프라 확충을 위한 대책은 사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분분하다. 특급호텔 유치가 꼭 필요하다는 의견과, 무리한 유치보다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경주 등과 연계한 공동 발전을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 등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숙박 인프라 부재가 현재 포항의 발전에 제약이 되고 있으며 언젠가는 특급호텔 같은 종합 컨벤션시설을 유치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는 뜻을 함께하고 있다.
한국은행 포항본부 김진홍 부국장은 "당장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사례처럼 중저가 호텔을 중심으로 포항의 기본적인 숙박 인프라를 향상시키는 한편, 국제대회 등 규모가 큰 사업은 인근 경주와 공동으로 관광자원을 개발해야 한다"면서 "환동해 중심도시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포항이 주체가 될 만한 중심시설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무조건 거대 규모가 될 필요는 없으며 숙박과 음식시설, 컨벤션 시설의 서비스 선진화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포항 이상원 기자 seagull@msnet.co.kr
신동우 기자 sdw@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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