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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언덕] You'll Never Walk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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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고등학생이 된 둘째 녀석은 '콥'(Kop)이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리버풀의 열성적 팬이란 얘기다. 휴대전화 바탕화면의 주인공은 당연히 '리버풀의 심장' 스티븐 제라드(35)이다. 친구들의 전화번호도 자신이 좋아하는 구단 선수 이름들로 바꿔 저장해둘 정도다.

녀석의 버킷 리스트 역시 안필드(Anfield) 구장에서 다른 콥들과 함께 팀 응원가 'You'll Never Walk Alone'을 목청껏 불러보는 것이다. 몇 년 전 가족 배낭여행 때 리버풀에 들를 기회가 있었지만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게 미안할 따름이다. 인기 구단답게 장난 아닌 티켓 값이 솔직한 이유였다. 대신, 런던 크레이븐 코티지(Craven Cottage)에서 기성용이 출전한 스완지시티 경기를 관람했지만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그런 녀석에게 지난 22일은 악몽이었다. '영원한 캡틴' 제라드의 예기치 못한 퇴장 때문이다. 자신의 마지막 '노스 웨스트 더비'로 열린 맨유와의 홈 경기에서 제라드는 교체 투입 30여 초 만에 레드카드를 받았다. 태클을 걸어온 상대 선수의 정강이를 밟아버린 비신사적 행동에 따른 제재였다. 고 3 수험생인 형 몰래 노트북으로 경기를 시청하던 녀석은 결국 경기를 끝까지 보지도 않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9년 만에-자신의 17년 프리미어리그 경력 사상 여섯 번째-퇴장을 당한 제라드는 경기 후 "내 행동에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사과했다. 그는 "팀 동료들과 감독님을 실망시켰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서포터들에게 실망을 안겨줬다는 점"이라며 "사과하는 것 말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팬들의 반응이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선수 경력 모두를 리버풀에서만 보낸 제라드의 사과 인터뷰를 실은 구단 홈페이지에는 '전설'다운 행동을 보여주지 못한 데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미친 짓' '실망' '불명예' 같은 단어들이 총동원됐다.

물론, 팀의 영웅이었던 제라드에 대한 비난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이 어려워진 데 따른 팬들의 불만도 녹아 있다. 리버풀은 이 경기를 내주는 바람에 프리미어리그 5위에 그치고 있다. 리그 4위 팀이 나서는 챔스리그 플레이오프 진출마저도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팬으로서, 그를 향한 싸늘한 시선은 '공인'으로서의 자세에 대한 질책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그는 모범적인 자기 관리로 '주장의 표본'이란 찬사를 들어온 대선수다. 그라운드 위에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온 그의 '더티 플레이'에 실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실제로 각광받던 스포츠 스타들이 순식간에 몰락한 경우는 적지않다. 암을 이겨낸 인간승리의 아이콘이었던 사이클리스트, 랜스 암스트롱은 금지약물 상습 복용이 적발돼 사상 최악의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또 미국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였던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금지약물 복용이 들통나면서 지난 시즌을 통째로 쉬어야 했다. 내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 출전이 불확실한 박태환 역시 '수영 영웅'의 명예를 그만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양대 프로 리그의 계절이 돌아왔다. 프로축구 챌린지(2부 리그)의 대구FC는 29일 대구스타디움에서 강원FC와 시즌 홈 개막전을 치른다. KBO 리그의 삼성 라이온즈는 하루 앞서 28일 대구시민야구장에서 SK와의 격돌로 144경기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스포츠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로서 시즌을 맞는 바람이 하나 있다. 청소년들에게 롤 모델 역할을 하는 프로 선수들이 페어플레이만 생각해주면 좋겠다. 경기에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선망의 시선이 있음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선수는 팬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You'll Never Walk Alone! 당신은 혼자가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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