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보다 잘하겠다. 무상간식도 하고…."
지난 3월 초 대구 달서구의 어느 중학교 3학년 교실. 한 학생이 반장 선거에 나오며 이런 공약을 말하자 여기저기서 술렁거렸다. 중학생의 눈에도 대통령이 썩 내키지 않았던 탓일까. 기껏 수십 명 정도의 반을 대표하는 반장 선거에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을 들먹이니 말이다. 게다가 대구에서는 구경조차 힘든 '무료급식' 대신 '무료간식'을 준비하겠다니, 그 재치에 뒷맛 쓴웃음이 절로 난다.
대구지역의 무상급식을 들여다보면 반장 후보의 공약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구는 각종 통계에서 꼴찌와 낯설지 않은 도시다. 국회자료에 따르면 대구의 유치원과 초중고의 무상급식 비율은 10.4%다. 최근에 무상급식을 중단한 경남을 제외하면 가장 낮다. 이는 전북의 94.4%는 물론 전국 평균 수준인 경북의 58.1%에 비해서도 턱없이 모자란다. 달성군을 빼면 400명 이하가 다니는 작은 초'중등학교만 무상급식을 하고 있는 정도다.
빠듯한 살림살이를 감안하더라도 대구의 무상급식 비율은 유별나게 낮다. 학부모들의 생활형편이 다른 도시보다 좋아서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고 그 반대다. 2013년 기준으로 대구의 1인당 평균 지역내총생산(GRDP)은 1천815만원이다. 이는 전국 최고 수준인 울산의 6천42만원에 견주면 30% 수준이다. 그럼에도 울산의 무상급식 비율은 대구의 2배가 넘는다.
무상급식을 이념의 잣대로 바라보는 보수정당의 텃밭이어서 그럴까. 홍준표 경남지사가 무상급식 중단을 비판한 교육감들에게 "진보 좌파 교육감들의 편향된 포퓰리즘"이라고 겨눈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의 무상급식은 2007년부터 경남 거창과 이듬해엔 남해, 경기도 성남, 과천 등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무상급식을 시작한 대부분의 지역단체장은 지금의 새누리당 소속이다.
그렇다면 무상급식 공약을 내걸지 않은 시장과 교육감을 뽑아서일까. 그 또한 아닌 것 같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은 초등학교의 전면 무상교육을 내세웠다. 하지만 올해 초등학교 1, 2학년의 전면 무상급식은 없던 일이 됐다. 아이들에게 더 없이 인색한 시장이고 교육감이다. 예컨대 결식아동 식사비만 보더라도 한 끼 3천500원으로 서울이나 부산보다 낮고 울산과 같은 최저 수준이다. 그런데 권 시장은 어느 종합편성채널에 나와 선별적 급식을 유지하면서 급식의 질을 높이겠단다.
요모조모 따져보면 무상급식을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게 꼭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한정된 돈으로 우선순위를 매겨 써야 할테니 말이다. 무상급식 비용 또한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니 학부모들에게 경제적 이익만을 내세울 수도 없다. 그렇더라도 복지 과잉이니, 부잣집 아이들에게 공짜 밥을 먹일 필요가 있느냐는 식의 접근은 본질이 아니다. 급식도 교육이고 의무교육에는 의무급식도 포함되는 게 당연하다.
밥 한 끼 먹기 위해 얼마나 못사는가를 증명해야 한다면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가장 서러운 밥이 눈칫밥이라 하지 않았나. 아이들의 무상급식은 선별복지나 보편복지냐를 따지기 전에 인간의 존엄성 문제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먹는 밥 한 끼에도 차별을 받는다면 이는 어른들의 잘못이다. 말하자면 무상급식은 미래를 위한 투자개념의 학생수당인 셈이다.
2012년 12월, 무상급식을 하겠다고 밝힌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14년 6월에 당선된 대구시장과 대구시교육감도 무상급식을 마다하지 않았다. 2015년 3월, 대통령보다 잘하겠다며 무상간식을 앞세운 친구는 반장에 뽑혔다. 하지만 4월이 다 가도록 무상간식은커녕 아무 일도 하지 않자 아이들은 웅성댔다. 그러자 반장은 오랜만에 친구들 앞에 나와 간결한 어조로 한마디 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잘하는 거다."
박창원/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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