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인범 아버지와 주경야독 딸, 1천 통 편지로 다시 이은 가족애

5월 가정의 달, 대구교도소에 '11년간 사연' 매일신문에 보내와

수민 씨의 아버지가 보내온 편지.
수민 씨의 아버지가 보내온 편지.
예비 화가인 수민 씨가 습작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
예비 화가인 수민 씨가 습작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

살인혐의로 구속돼 대구교도소에서 올해로 11년째 수형자 삶을 살고 있는 장명구(가명'54) 씨. 그는 최근 매일신문사에 편지 한 통을 보내왔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 하는 것이라지만 그의 편지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딸 자랑이 이어졌다. 지난 11년 동안 아버지 없이 잘 자란 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사고무친(四顧無親) 처지에 놓인 무남독녀 수민(가명'23)이. 5월 가정의 달만 돌아오면 온 수민이를 생각하며 가슴이 찢어졌다고 그는 썼다.

수민이 엄마는 수민이가 세 살 때 집을 나갔다. 자신이 살인 혐의로 구속되던 해, 딸 수민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당시 팔순의 어머니와 세상물정 모르는 수민이가 감당해야 했을 심적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도 잠이 오지 않는다고 그는 얘기했다.

수형생활 2년이 다 됐을 무렵, 수민이가 할머니와 함께 면회를 온다는 소식을 받았다. 첫 면회였다. 수민이가 수의를 입은 자신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등 온갖 궁금증으로 밤을 하얗게 새웠다는 것.

다음 날 수민이가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나타났다. 너무 보고 싶었던 딸이지만 선뜻 다가갈 수 없었다. 그때 난생처음 자식에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수민이 역시 먼 발치에서 쳐다만 보고 있을 뿐 가까이 오지 않았다. 수민이는 나중에 "죄를 지은 아버지가 미워서가 아니라 왠지 낯설어 보여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아버지에게 털어놨다.

수민이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뒤엔 혼자 면회를 왔다. 이후 딸과 아버지는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면회를 통해 마주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부족한 얘기는 편지로 대신했다. 지금까지 주고받은 편지가 1천 통 가까이 된다고 했다.

수민이는 어릴 적부터 그림에 유난히 소질을 보였다. 각종 사생대회에서 상을 받을 때마다 상장과 그림을 복사해 교도소로 부쳐줬다.

수민이가 고3 수험생일 때 미술대학에 진학하고 싶다고 했지만, 수형자 처지에 선뜻 대학 진학에 대한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답할 수가 없었다.

결국 수민이는 대학 진학을 미루기로 했다. 학교에서 취업추천을 해줘서 구미공단의 한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러나 미술에 대한 꿈을 버릴 수 없었던 수민이는 일이 끝난 후 틈틈이 미술학원에서 재능을 다져 2013년 대구의 한 4년제 대학 미술학과에 당당히 합격했다. 장 씨는 이 소식을 듣고 뛸 듯이 기뻤다고 했다.

장 씨는 내년 11월 27일, 만기 출소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평생 부모 노릇 못한 죄를 앞으로 다 갚겠다고 했다.

"수민이에겐 그동안 초'중'고 세 번의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수민이 곁에 없었습니다. 내년이면 이제 수민이 곁으로 갈 수 있습니다. 수민이의 마지막 학창시절 추억을 남길 대학교 졸업식에는 한아름 꽃다발을 들고 달려가겠습니다." 장 씨는 '딸이 꼭 멋진 화가가 돼 못난 아버지처럼 살지 않도록' 매일신문 독자들이 열심히 응원해달라고 했다.

달성 김성우 기자 sw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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