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상담실에서-가정여성] 폭력 일삼는 엄마, 죽고 싶은 딸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고민= 30대 중반의 미혼 여성으로 겉으로 보기에는 남부럽지 않은 평범한 가정의 막내입니다. 위로 2명의 오빠는 소위 말하는 일류대학을 나왔고, 부모가 자랑할 만한 위치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폭력을 보고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오시면 발로 차기도 하고 때렸으며, 참다못한 아버지가 대들면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져 그때마다 저희는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부부싸움 후에는 항상 모든 화살이 자식에게 날아와 불안하고 두려운 적이 많았습니다.

아버지도 화가 나면 가끔 저를 때렸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당하는 폭력을 보며,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오빠들은 이미 어머니와 담을 쌓고 따로 나가 버렸습니다. 저도 더 이상 이대로 사는 것은 죽기보다 싫습니다. 저도 혼자서 살아갈 경제적 능력은 있지만 어머니의 틀을 벗어날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가지라도 어머니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저희 형제는 폭언과 폭력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저 그림자 같은 존재입니다. 어머니를 제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제가 죽어 없어져야겠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제발 좀 도와주십시오!!

■해법= 남 보기에 그저 평범하고 성공적으로 보이는 가정에서 이렇게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안고 살아온 귀하를 생각하면 가슴이 멍하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말문이 막힐 따름입니다. 누구를 어떻게 원망해야 할지 막막하고, 절벽에서 애원하는 귀하의 절규에는 가슴이 찢어지는 통증이 느껴집니다.

이러한 절박한 순간에도 마지막 힘을 발휘하여 외부에 도움을 요청한 귀하에게 먼저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살아야죠! 시시비비는 나중에 가리기로 해요! 그동안 창살 없는 감옥에서 얼마나 몸부림치며 고생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아요.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현명한 대처 방법을 찾도록 합시다. 30대 중반이 되도록 경제적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틀 속에서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살아온 귀하의 착한 마음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혼자서 고민하고 속 끓이며 죽음까지 생각하는 그런 파괴적인 방법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방법으로 용기를 가지고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오랜 세월 자유가 없는 가정에서 일방적으로 참고 견디어 온 자신에게 스스로 전폭적인 지지와 격려를 보내며 칭찬해야 합니다. 둘째, 폭력에는 무조건 강하게 저항하고 탈출해야 합니다.

우선 주거를 어머니와 분리해서 독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머니는 전문가에게 안내하여 설득하도록 합니다. 어머니의 자녀 양육 스타일과 자녀의 기질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거나, 어머니의 성장 과정에서의 결핍이 자녀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야 합니다. 셋째,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에 대한 양가감정을 통찰하고, 착한 딸의 역할을 보류한 후 현재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폭력에 장기간 노출된 경우 후유증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심리 정서적 장애를 겪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 어머니를 상담으로 안내하여 자기 통찰을 하도록 돕습니다. 어머니 자신의 성장 과정을 돌아보게 하고, 현재의 부부 관계 및 자녀와의 관계를 통찰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어머니도 남다른 가정을 꾸려가기 위하여 헌신하고 노력한 부분이 있으니 억울함을 해소하고 건강한 어머니의 모습을 회복하도록 돕는다는 것입니다.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귀하의 행복을 위하여 새로운 출발을 할 때입니다. 어머니와의 분리! 이 세상을 향한 용기 있는 첫걸음을 위하여 '파이팅'합시다.

■해법 도출 과정= 본 사례는 성인이 된 딸이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폭언'폭력에 노출되어 의욕을 상실하고 세상을 헤쳐나갈 용기를 잃어버린 채 죽음까지 생각하는 막다른 골목에 이른 상황입니다. 부모의 부부폭력을 관찰하며 공포에 떨고, 부모의 감정 해소의 수단이 되어 폭력을 당하기도 한 내담자는 심각한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부모의 부부 관계가 파괴적이면 힘 있는 자녀들은 빨리 성장하여 부모를 떠납니다.

그러나 자신의 힘이 미약한 경우 부모의 희생자가 되어 더 큰 고통을 감수하며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가 결국 부모를 공격하거나 자해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자녀의 문제 뒤에는 부모의 문제가 필수적으로 존재합니다. 부모의 문제란 자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부모 자신의 성장기에 결핍이 있었던 경우 자신의 결핍을 채우고자 부모의 신념이나 가치대로 자녀에게 강압적인 태도로 스트레스를 주는 경우입니다.

부모 자신의 경험과 생각으로 자녀를 좌지우지하려다가 자녀와의 관계가 파탄에 이르게 됩니다. 그럴 경우 자녀는 부정적인 자기 가치를 지니게 되고, 부모는 부모대로 억울하고 화가 나서 악순환이 일어납니다.

부모의 시대와 자녀의 시대는 많은 차이가 있고 자녀는 부모와 다른 인격체입니다. 자녀에게 존경받는 부모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부모가 최선을 다한다 해도 자녀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면 부모의 노력은 헛수고가 됩니다.

부모의 의도가 잘 전달되려면 자녀의 마음부터 헤아려야 합니다. 부모의 방식대로 자녀에게 일방적으로 하는 것 자체가 폭력입니다.

본 사례의 해법은 첫째, 내담자를 칭찬 격려하여 용기를 주고 부모와 분리하도록 하며, 한편으로는 부모를 설득시켜 내담자를 분리시키도록 돕는 것입니다. 둘째, 의욕을 상실하고 죽음까지 생각하는 내담자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도록 전문적인 개입을 합니다. 셋째, 부모 상담을 통하여 부모의 성장 과정을 탐색하여 자기 이해를 돕고, 원만한 부부 관계, 부모와 딸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장기적인 계획을 세웁니다.

박경규/(사)영남가정폭력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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