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나이 스물이 넘은 딸애는 달리아 꽃보다 더 탐스럽게 피어 있다. 문명의 이기인 휴대전화를 든 처녀의 손도 신비로워 보이지만, 무선으로 전하는 파동의 문자메시지 또한 기이한 데가 있다. 아침마다 부산을 떨더니, 오늘은 부드럽게 공간 속을 유영하는 딸의 몸짓과 숨소리, 소곤거리는 음성은, 흡사 태초의 이브와도 같다. 이를 바라보다가 햇빛에 드러난 잎맥인 양 딸의 두 팔에 드러난 흰털을 보고는, 문득 사춘기적 감성의 열세 살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무렵 어린 딸은, 자주 젖가슴 근처가 찌릿찌릿 아프면서 딱딱한 멍울이 만져진다고 야단이었다.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발긋발긋 귓불이 뜨겁다고 앙탈을 부렸다. 물론 아랫배 통증도 우릿하게 아려온다고도 했다. 처음 나는 딸애가 무엇을 잘못 먹은 체증인가 여겨서, 사알~살~ 아이의 배를 어루만져주었다. 그 모습을 눈여겨보던 아내가 슬쩍 건넛방으로 나의 소매를 잡아끄는 게 아닌가. 그리곤 귀엣말로 여자가 되어가는 그 야릇한 '첫 비밀'에 대해 귀띔해주었다. 그렇게 한밤중 딸은 초경(初經)의 신호를 받았다. 꽃잎이 찡그리듯 예쁜 얼굴이 이지러졌다. 생리가 터지기 직전의 소녀의 통증은 무척 고통스러워보였다. 난생처음 나는 소녀가 처녀가 되어가는 신비로운 사실을, 그날 밤 서너 시간 동안 딸애를 통해 알게 된 셈이다. 어머니의 양수 속에서 자라 남자가 된 나인데, 어처구니없게도 여성의 몸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지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아내는 사춘기 딸애를 앞에 두고 실감 나게 여성의 생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아빠가 듣는 여자들의 은밀한 몸의 비밀들이 못내 부끄러운지 딸애는 자꾸만 방 밖으로 나를 떠밀어내었다. 시인은 궁금하면 미친다. 문밖에서 그들 모녀가 하는 말을 귀를 대고 엿들었다.
그러다 문득 거실에서 키우고 있는 게발선인장에 내 눈길이 닿았다. 한창 빨간 꽃망울이 별의별 모양으로 색깔을 내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꽃망울이 너무 작아 거의 보이지 않더니, 그날따라 딸애 젖멍울만 한 것이 여러 개 부풀어 올라 있었다. '꽃망울과 젖멍울' 두 말은 어쩐지 상당히 닮은 데가 있다. 말은 이유 없이 생기지 않고 이치가 비슷한 데 이르면 서로 닮는가 보다.
다음 날 모녀는 백화점에 들러 꽃받침을 닮은 브래지어 하나를 사왔다. 어린 딸애의 작은 젖가슴을 캡 속에 예쁘게 모아 주기 위해서란다. 부풀어 오른 여자 몸의 변화가 마냥 신기하고 호기심으로 가득 찬 딸. 온종일 저 혼자 신이 났다. 브래지어 훅을 '끌렀다 이었다, 이었다 끌렀다' 그 도화경 같은 놀이에 푹 빠졌다. 곁에 서서 딸애의 앙증스러운 정경을 보고 있자니, 나의 생각은 생뚱맞게 엉뚱한 곳으로 뻗쳤다. '저 우리 집 앞마당에 핀 매화꽃도 브래지어를 하는 걸까. 수벌 놈이랑 수팔랑나비 놈들은 저 꽃의 브래지어 훅을 대체 어떤 방법으로 풀까.'
참 그 봄날, 오래간만의 시적 비유로 인해 나 혼자 파안대소했다.
김동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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