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80) 할머니는 10여 년 전부터 홀로 산다. 자녀 3명이 있지만 굶지 않을 정도로 생활비를 보내줄 뿐이다. 할머니는 홀로 끼니를 챙겨 먹고, 외출도 거의 하지 않는다. 이웃들과 교류도 없다. 어느 날 할머니 가슴에서 이상한 멍울이 만져지기 시작했다. 몸이 너무 피곤했고,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한 날도 있었다.
대구시가 어려운 이웃들의 '주치의'를 만들어주겠다며 꾸린 '달구벌 건강주치의' 의료진이 할머니를 찾았을 때 할머니의 가슴에서는 고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유방암이었다. 당장 수술이 필요했지만 달구벌 건강주치의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자녀들이 있어 A할머니는 '지원 불가 대상'이었다.
권영진 시장의 대표 공약사업으로 대구시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의료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달구벌 건강주치의 사업이 겉돌고 있다. 저소득층에게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지만 기준이 너무 까다롭고 제도를 지탱해줄 돈도 없다 보니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턱없이 적은 것이다. '이럴 거면 뭐 하러 만들었느냐'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대구시는 지난해 10월 기초생활수급 탈락자나 일시적으로 건강보험 수급이 중단된 사람 등 의료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해 주치의 제도를 만들었다. 대구의 의료취약계층은 연평균 1천600명가량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올 상반기까지 이 제도를 통해 발굴된 지원 대상은 119명에 불과하다.
지원 대상이 적은 이유는 지원 기준이 너무 까다로운 탓이다. 지원을 받으려면 가구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200% 이하이면서 급성기 질환을 앓고 있어야 한다. 고혈압이나 당뇨 등 만성질환은 지원 대상이 아니다. 의료급여 수급자이거나 A할머니처럼 자녀들이 경제적 능력이 있으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지원 기준에 못 미치면 대상자가 될 수 있는 심의위원회 심의를 따로 거쳐야 한다.
암 등 고가의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중증질환 환자에 대한 지원 체계도 아직 없다. 대구시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기업 후원을 일부 확보했지만, 상급 종합병원의 비싼 의료비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대구시내 대학병원들은 병원이 떠안게 되는 치료비 부담이 커 '달구벌 건강주치의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의료취약계층을 면밀하게 살펴본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사업의 효과가 있다"면서 "3차 병원과 협력을 강화하고, 발굴 대상도 확대하는 등 지속적으로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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