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느 학교에 갔나요?"
"서울 약대 보내려 했는데 서울 상대 갔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아! 서울에서 약간 먼 대학 보내려다 서울에서 상당히 먼 대학 보냈습니다."
얼마 전 지인에게 들은 얘기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그냥 재미난 농담이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 대학입시의 단상을 보는 듯했다.
이제 곧 대입 수시모집 원서를 접수하는 시기다. 학생들은 수시나 정시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수능시험이 쉽게 출제되고 정시 비중이 줄어들면서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재수생의 증가다. 단순히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1년 더 노력해서 좋은 대학에 가려는 학생도 많겠지만 의도하지 않게 재수를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더 많이 벌어지는 데 따른 결과다. 대구를 놓고 보면 수성구의 재수생 비율이 40% 정도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 뒤를 남구가 따르고 있는데 이는 광역 단위 자사고인 경일여고의 재수생 비율이 57.2%로 높은 데다 고교 수가 적어서 나타난 현상이다.
수시에서 6번 지원 기회와 정시의 3번 지원 기회를 합해 9번의 지원 기회가 있는데 재수생이 늘어난다는 것은 얼핏 이해하기 힘든 사실이다. 이는 수능시험이 쉽게 출제되기 때문에 한 번 더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모집 비중이 훨씬 큰 수시에서 자신에게 맞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데 더 큰 원인이 있다. 고3 재학생들이 수시 지원 전략을 짜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학교 현장을 들여다보면 상당수 학생들이 정시를 앞두고 한 번 지원해 보는 정도로 수시를 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시에서 합격할 가능성이 있는 대학보다 상향 지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으며, 진학지도 또한 이러한 경향으로 이어진다. 입시 업체들의 수시 지원 설명회에서도 '정시에 합격 가능한 대학보다 높여서 지원하라'는 말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 이런 분위기 탓에 자신의 내신 성적과 모의고사 성적으로 합격하기 어려운 대학에만 지원하다 보니 비중이 60%가 넘는 수시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수시 지원 전략을 짜는 기준으로 정시 지원 가능 대학을 알려주는 '배치표'를 활용한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고교나 사설 학원들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9월 모의평가 결과가 나오기 전에 수시 지원 일정이 시작되기 때문에 평가원의 6월 모의평가 성적을 기준으로 지원 가능 대학을 가늠하고 있다. 물론 정시 지원 가능 대학을 보여주는 배치표를 활용한다. 이를 기준으로 자신이 지원 가능한 대학을 결정하고 이보다 더 높은 대학 중에서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을 선택하는 것이 수시 지원의 일반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모의고사 성적을 기반으로 한 정시 배치표를 활용하는 전략은 수시와 정시 전형의 기본적인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다. 수시에서는 수능 성적을 최저학력기준으로 활용할 뿐, 당락을 좌우하는 것은 다른 전형요소들이다. 수능 성적이 좋다고 반드시 합격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다소 성적이 나쁘다 해도 얼마든지 합격할 수 있는 것이 수시의 특성이다. 수능 성적 외에 다른 요소들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데도 이를 기준으로 지원 전략을 짜다 보니 합격률이 생각만큼 높게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수시에 지원할 때는 모의고사 점수를 생각하기 이전에 자신에게 유리한 전형을 선택하는 것이 기본이다. 우선은 3년 동안의 학교생활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자신에게 맞는 전형을 선택해야 한다. 전형에 따른 자신의 장'단점을 분석한 뒤 합격 가능성을 예측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부 교과전형으로 지원할 때와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지원할 때 합격 가능성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학생부 종합전형과 논술전형 지원 시에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배치표를 활용해 안전이냐, 적정이냐, 상향이냐를 판단해 보는 것은 자신에게 유리한 전형을 선택하고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따져본 후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는 경우에만 나름 의미가 있다. 특히 고3 재학생들은 수능시험에서 자신의 모의고사 성적만큼의 결과를 얻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 수시에서 정시에 합격 가능한 대학을 지원해 안전판을 만들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턱대고 배치표를 기준으로 지원 전략을 짜는 것과는 결과가 천양지차일 수 있다.
'재수는 필수고 N수는 선택이다'는 말은 고3 재학생이 수시 전략을 잘 세우거나 수능 성적을 잘 받는 경우 중 어느 하나도 이루기가 쉽지 않은 데서 나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재수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굳이 사서 할 필요는 없다. 수시 지원 전략을 자신의 장'단점과 모집 전형에 맞게 짜고 있는지 되돌아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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