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장바닥에서 구해온 부레옥잠 한 그루 마당의 키 낮은 항아리에 담겨 있다가, 어제는 보랏빛 연한 꽃을 피우더니 오늘은 꽃대궁 깊게 숙이고 꽃잎 벌리고 있다 그것을 보며 이웃집 아낙, 꽃이 왜 저래? 하는 낯빛으로 담장에 기대섰을 때 저 부레옥잠은 꽃이 질 때 저렇게 고개 숙여요―, 하고 아내가 대답하자 밭을 매러 가던 그 아낙, 제 꽃 지는 자리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구먼―, 한다 제 꽃 지는 자리,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그 꽃 제 꽃 진 자리,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그 꽃 몸에 부레 같은 구근을 달고 있어, 물 위를 떠다니며 뿌리를 내리는 물 위를 떠다니며 뿌리를 내려, 아무 고통도 없이 꽃을 피우는 것 같은 그 부레옥잠처럼 일생을 밭의 물 위를 떠흐르며 살아온. 그 아낙 오늘은 그녀가 시인이다 몸에 슬픔으로 뭉친 구근을 매달고 있어, 남은 생 아무 고통도 없이 꽃을 피우고 싶은 그 마음이 더 고통인 것을 아는 저 소리 없는 낙화로, 살아온 날 수의 입힐 줄 아는 ……
(전문. 『도장골 시편』. 천년의시작. 2007)
(「그림. 어디서 본듯한, 그러나 본 적이 없는……」 『개같은 날들의 기록』) 이 시인의 차례가 되면 올리려고 접어놓은 시다. 1990년 이전에 쓰인 시지만 아직도 현실감 있게 읽힌다. 아직도 많은 노동자들이 공장이 아닌 거리에 서 있고, 크레인에 올라 가 있다. 부레옥잠은 점점 더 나빠지는 이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스스로의 '꽃이 지는 자리'도, '꽃이 진 자리'도 흔적 없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 몸에 슬픔을 뿌리처럼 매달고 살아가는 우리 '세계의 비극성'. 그래서 부레 옥잠과 골리앗 크레인 이야기는 다르지 않다. 수의를 입은 '이 아름다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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