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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맹의 시와함께] 강으로 가서 꽃이여-김사인(1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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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에 손을 얹고 꽃이여 이마에 여윈 손 얹고 꽃이여

어둡게 흘러가는 강가로 가자 어린 자갈들은 추위에 입술 파랗고 늙은 여뀌떼 거친 종아리

강으로 가서 우리는 강으로 가서 다만 강물을 보자

하늘엔 찬 별도 총총하리 시든 풀의 굽은 등엔 서리가 희리

취한 듯 슬픔인 듯 강으로 가서 다만 묵묵히 강물을 보자 이마에 손 얹고 꽃이여

(전문.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 2006)

강은 물의 이미지다. 바슐라르는 "대지의 참다운 눈은 물이다. 그리하여 물은 대지의 시선이 되고 시간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은 물의 흐르는 시선인 것이다. 우리는 어두운 밤에 강으로 나간다. "물과 밤은 다 같이 공통된 향기를 띠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며, 축축한 그림자는 이중의 상쾌함을 지닌 향기를 갖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물의 향기를 잘 느낄 수 있는 것은 밤뿐"(바슐라르)이다. 그런데 물의 시선에서 볼 때 우리는 여위고, 춥고, 늙고, 굽은 등을 가진 슬픔에 취한 한 인간이다. 별은 멀고 우리의 등에는 서리만 희다. 그러나 그럼에도 강은 묵묵히 우리의 이마에 손을 얹어 우리를 위로하고, 우리를 꽃이라 불러 준다. 강은 어둡게 흘러가지만 강과 밤의 향기는 우리를 더 깊게 만들어 준다.

우리가 왜 밤에 강으로 나와야만 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왜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따뜻하게 위로받기를 원하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슬픔은 우리의 '공통 감각'이어서 그로부터 우리는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 시의 단순성과 통속성을 물과 밤이 달콤한 슬픔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대, '강으로 가서 꽃이여', 그대 슬픔 위로받고, 그대 옆의 누군가에게도 이마에 손 한 번 얹어주는 그런 강물이 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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