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호(56) 농촌진흥청장은 농촌에서 태어나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잔뼈가 굵었고, 지금도 농업 분야 과학기술 개발에 전력을 쏟고 있다. 한평생 농업과 농촌 현실에 천착해왔기에 농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꿰뚫고 있다.
이 청장은 '농민 속, 농촌 속'으로 들어간 현장정책을 특히 중요시한다. 이 때문에 이 청장이 내거는 농진청의 모토는 '고현정'이다. 농민 '고'객 중심, 농촌 '현'장 중심, 농민과 농촌을 위한 '정'책 중심을 바탕으로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농민들을 직접 찾아가 종자, 기후, 토양, 질병 등 어떤 쪽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전문가 진단을 한 뒤 해결책을 제시하는 맞춤형 농업 컨설팅에 정책의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는 "농업 분야는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니라 농민들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현장에서 꼭 필요한 기술을 연구'보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농사를 짓는 부모님 곁에서 체험농장을 운영하고픈 마음이 있을 만큼 농촌과 농업에 대한 애착이 강한 그로부터 농촌 현실과 농업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농촌의 당면 문제는.
▶개방화, 노동력 부족, 기후변화 등 3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한 개방화로 외국 농산물이 대거 유입되고 있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농촌의 급속한 노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도 심각하다. 농촌에 40대 이하는 잘 없고, 농장주의 평균연령이 65세 정도다. 규모 있는 농업을 통해 상업화를 하려면 기계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노동력이 필요하다. 결국 외국인노동자를 주로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온난화 등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도 시급하다. 올 초부터 많이 가물어 보리, 밀, 감자 등 봄 작물이 잘 안됐고, 저수율이 낮아 내년 봄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제주도에서 아열대 작물인 커피를 키우고, 영천'경산의 사과가 강원도까지 올라갔고, 나주 배는 경기도 안성까지 진출했다. 기후 변화에 따른 작물 재배방식의 변화와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
-농촌 현실에 대한 타개책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함께 선진농업과학기술 보급이 필요하다. 농식품부는 보조금과 같이 농촌에 대한 자금지원과 규제완화 등 정책적 지원을 해야 한다. 농촌진흥청은 첨단과학기술을 도입해 농업의 자동화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
-농촌진흥청의 역할은.
▶1962년 설립 이후 53년 만인 지난해 7월 전라북도 혁신도시로 옮겼다. 본청과 4개 과학원으로 구성돼 있다. 식품'농기계'미생물'곤충 등을 연구하는 농업과학원, 원예작물과 관련한 원예특작과학원, 쌀과 밭작물을 연구하는 식량과학원, 소와 돼지 등 종축 연구를 하는 축산과학원 등이다. 각종 농업자원과 관련한 신품종, 재배법, 병충해 방지 등을 연구해 이 결과물과 기술을 농촌에 보급한다.
-농업 현실 타개를 위한 농진청의 정책은.
▶스마트 팜, 6차 산업화, 밭농업 기계화, 농산물 가공 및 수출 확대 등을 꼽을 수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농장에 접목해 생산력을 높이고 경영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스마트 팜 기술의 조기 실용화에 힘을 쏟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환풍, 온도, 문 개폐 등을 조정할 수 있는 첨단기술을 도입한 농장이다. 군위군의 파프리카 재배 농가를 비롯해 'ICT 기반 스마트 팜 시범농장'을 전국 도별로 1곳씩 육성하고 있다.
농업 생산(1차)을 기반으로 가공과 유통(2차), 체험 및 관광(3차)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해 농가소득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농업의 6차 산업화도 중점 추진하는 정책이다.
밭작물의 기계화도 주요 과제다. 현재 벼농사는 98%가 기계화됐다. 밭작물은 품종이 다양해 종별로 재배양식을 동일화하고, 맞춤형 기계를 품종에 맞게 개발해야 한다.
개방화 시대를 맞아 내수를 넘어 중국,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 큰 시장을 겨냥한 수출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신선식품뿐 아니라 가공식품 개발 및 수출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이 같은 기술개발과 정책이 잘 추진된다면 우리 농업도 경쟁력을 갖춘 미래 성장산업으로 희망이 있다.
-청장 취임 후 중점을 둔 정책추진 방향은.
▶고객 중심, 현장 중심, 정책 중심을 바탕으로 한 '고현정'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다.
농업 분야는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니라 현장에서 꼭 필요한 기술을 연구'개발해야 한다. 현장 농업인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다.
'현장에 찾아가는 기술지원' 정책이 농민들로부터 단연 인기를 얻고 있다. 기후, 토양, 종자, 농약, 질병 등 분야별 전문가 4, 5명이 함께 농업 현장에 찾아가 상담과 기술지원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올해도 벼농사, 한우농가 등 식량'원예'축산 분야를 대상으로 마을 단위로 찾아가 40회가량 기술지원을 했다.
대학병원과 MOU를 체결해 건강검진을 비롯해 농기계수리, 농업컨설팅 등 종합적인 지원 서비스를 하는 '이동식 농업종합병원'도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농진청이 개발했거나 개발 중인 첨단 농업과학기술은.
▶기후 변화에 따른 신품종 개발과 밭작물 기계 개발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열대지방에서 잘 자라는 '아새미' 벼를 개발하는 등 더위와 새로운 질병에 강한 신품종을 개발하고 있다. 벼농사는 콤바인, 이앙기, 무인헬기 등으로 거의 자동화됐기 때문에 밭작물 기계를 중점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고구마'양파'마늘'콩 수확기와 참깨 베는 기계는 이미 개발했다.
현재 고추 따는 기계를 개발 중이다. 고추는 익는 시기가 달라 5, 6차례 수확을 하는데, 뙤약볕에서 노인들이 상당히 애를 먹는다. 노동력이 부족해 중국산 고추가 대량 유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추를 한 차례 수확으로 5, 6차례에 걸쳐 수확하는 총량의 80%에 맞먹을 수 있는 품종을 개발하고 있다. 내년 말 목표로 고추 수확기를 농기계업체와 공동 개발하고 있다.
-공직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1983년 공직생활을 시작한 뒤 2차례의 외교부 근무를 제외하고 27년간 농식품부에서 일했다. 농업협동조합의 조직과 구조를 대폭 개혁할 때가 힘도 들었고, 기억에 남는다.
IMF 이후 협동조합과장을 하면서 부실 농협에 대한 구조개혁에 나섰다. 부실 은행은 공적자금 수십조원을 투입해 구조조정을 했지만, 전국 1천270여 개에 달하는 농협의 경우 공적자금을 지원할 근거나 관련 제도가 없었다. 이 때문에 농협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과 예금자보호제도를 만들어 자기자본을 잠식한 농협을 폐쇄하고 일부는 합병하는 등 농협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이후 농협정책국장을 할 때는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는 업무를 맡아 금융지주와 경제지주로 분리하는 데 역할을 했다.
-현 정부의 농업정책 중 보완해야 할 부분은.
▶현재 전국 농가수가 110만 가구로, 1980년대에 비해 크게 줄었다. 특히 이 중 60만~70만 농가는 비싼 기계 등을 제대로 구입할 수 없는 자급자족농이다. 나머지가 중농 이상 가구인데, 농가의 양극화가 심하다. 소농에 대해서는 사회보장제도 등을 통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데 반해 규모가 있는 농가에 대한 정부 지원책이 필요하다. 특히 중농 이상 농가의 경우 기업가와 같은 경영 마인드와 마케팅 능력이 절실한데, 이를 뒷받침할 정부 정책이 요구된다. 경상북도가 운영하고 있는 농민사관학교와 같은 역할을 하는 기관과 교육 프로그램이 전국적으로 확산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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