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친지들이 한데 모여 웃음도 넘쳐나고 갈등도 있었겠지만, 올해 추석도 소담하게 지나갔다. 호주머니 사정이 어렵다고 하지만 명절은 서민들의 마음만은 풍성하게 해준다.
이번 주 '즐거운 주말'에서는 '추석을 지내고… 할 말 있어요'라는 주제로 꾸며보았다. 가장 어색하고, 갈등과 오해의 소지가 많은 사이인 '시어머니와 며느리', '장인'장모와 사위', '올케와 시누이, 동서지간'으로 나눠서, 일반인들의 솔직담백한 속내를 편지 형식으로 받아서 지면에 그대로 실었다.
이 편지들을 읽다 보면 '꺼려질수록 정면돌파하라', '아무리 섭섭해도 기본 예의를 지켜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오해도 풀리고 이해가 된다' 등의 교훈을 찾아낼 수 있다. 자칫 가정불화로 치닫기 쉬운 어려운 사이인 '고부-장서-동서지간'의 속마음을 통해, 추석 이후 훈훈한 가족관계를 이끌어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추석을 지내고… "할 말 있어요!"
고대 역사가 증언하는 고부 갈등.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영원한 앙숙이 될 수밖에 없는가. 한 명의 늙은 여성에겐 아들, 또 한 명의 젊은 여성에겐 남편. 한 남자를 두고,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것일까. 명절이면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이들이 추석을 보낸 후 속마음을 드러낸 편지 두 편을 소개한다. 이런 시도 자체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평소에 하기 힘든 말을 용기 내서 글로 적었고, 시어머니 역시 며느리에게 품고 있던 가슴속 표현을 했다.
정리 권성훈 기자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편지
#며느리-이모 씨(30대 중반'직장인'대구 동구 효목동)
어머님! 저는 왜 섭섭한 것만 기억에 남죠. 이번 추석에도 어머님은 저한테만은 살갑게 대하지 않으시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추석 음식 준비하는 내내 어머님 눈치만 계속 살펴야 했어요. 제가 잘하려고 해도 어머니 성에 차지는 못하겠지만, 따뜻하게 대해주시면 열심히 하려고 더 노력할 텐데…. 어머님이 저한테 쌀쌀하게 대하시면 저도 반발심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그러면 또 추석을 쇠고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그 섭섭함을 토로하고, 오히려 어머니 욕을 하게 되고 결국 남편과도 언성을 높이게 된답니다.
이런 말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요. 용기를 내서 할게요. 사실 이번 명절에 친정어머니한테 드리는 용돈(10만원)보다 시어머니 용돈(20만원)을 더블(배)로 챙겼어요. 추석 선물도 항상 시댁에 가져갈 것을 더 많이 고민하게 되고요. 그런데도 얼마나 제가 탐탁지 않으시면, 저한테 '고맙다' '고생한다' '예쁜 우리 며느리' 등의 살가운 말씀 한마디도 하지 않으시는 거죠. 어머니가 그럴수록 제 섭섭함은 남편에게 원망이 되어 날아가고, 부부 싸움으로 이어질 때도 많아요.
어머니! 지금껏 짧은 소견의 제 불만을 맘껏 토로했는데, 뻥 뚫린 기분이에요. 서로 잘해야 갈등과 오해도 없겠지만, 제 생각이 항상 앞선다는 점은 저도 반성할게요. 그래도 어머니가 아들 잘 낳고, 길러주셔서 항상 고맙게 생각해요. 사실 제가 좋아서 남편에게 먼저 대시를 했거든요. 어머니 닮아서 그런지 속내도 되게 깊어요. 이번 추석 때 싸준 음식도 너무 감사하고요. 앞으로 제가 더 잘할 테니, 칭찬도 많이 해주셔용.
#시어머니-정모 씨(60대 중반'주부'경북 고령군 우곡면)
아가야~. 추석 때 음식 장만하는 거 도와주느라 고생했어. 고맙다. 너 일 참 똑 부러지게 잘하더라. 전과 튀김도 얼마나 예쁘게 잘하던지. 작은 며느리는 조금 뺀질거려서 싫은데, 넌 참 마음에 들어. 추석 음식 하는 동안 내 옆에 딱 붙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보따리를 재밌게 풀어주고. 요즘 며느리들 얄밉다지만 난 아니다. 너만 보면 즐거워. 신세대 참한 며느리야. 더불어 우리 아들 내조도 잘 부탁해.
그런데 한번씩 우리 아들이 너한테 섭섭하다고 내게 전화를 하더라. 주로 하는 말이 씀씀이가 조금 과하다는 말이야. 너 백화점에 가면 수십만원짜리 옷과 신발 등을 주저 없이 산다고 하더라. 그런 비싼 거 살 때, 솔직히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다. 물론 네가 잘 알아서 하겠지만 너희들 살림 형편에 맞는 소비를 했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
우리 큰 아가야~. 사실 내가 이런 편지 잘 쓸 줄도 모르는데, 신문사에서 추석을 보낸 후 속마음을 한번 털어놓아 보라고 해서 용기를 냈어. 그런데 막상 하고 나니, 주책없는 것 같아서 창피한 마음도 드네.
그래~~. 앞으로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니. 한 10∼20년 정도겠지. 추석을 함께 보낼 날도 많지는 않을 거야. 내 살아있는 동안 너한테 잘해줄게. 요즘은 며느리한테 큰소리치는 시어머니도 별로 없다고 하더라. 넌 내가 낳은 딸은 아니지만 내 딸만큼 소중하게 생각해. 앞으로 우리 서로 잘하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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