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사망 1주기 신해철

1년 지났지만… 팬들 마음에는 살아있는'마왕'

뮤지션 신해철의 사망 1주기를 맞아 대중문화계 전반에서 추모 열기가 뜨겁다. 서울 스카이병원에서 장협착증 수술을 받은 후 문제가 생겨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심정지로 쓰러진 게 지난해 10월. 이어 같은 달 27일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으로 생을 마감했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후 1년이 다 되도록 의료과실 여부에 대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으며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전 스카이병원 원장 강세훈에 대한 재판도 진행 중이다. 음악뿐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던 신해철의 생존 모습에 대한 대중의 그리움도 여전하다. 25일에는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에서 신해철을 애도하는 이들이 모여 추모식 및 봉안식을 진행한다. 앞서 24일 토요일에는 KBS2 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 JTBC '히든싱어4' 등 각 방송사의 주요 음악 프로그램이 사망 1주기를 맞아 신해철을 재조명한다.

◇의료과실 여부 공방전 장기화

가장 안타까운 건 의료과실 여부를 둘러싼 공방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신해철을 수술한 강세훈 전 스카이병원장은 의료과실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으며, 신해철 유족 측은 강 전 원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까지 내면서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애초 강 전 원장의 의료과실 여부를 둘러싼 형사 책임 공방에 이어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까지 확대된 셈이다.

현재 강 전 원장은 신해철을 상대로 위장관유착박리술을 시행하면서 소장 및 심낭에 천공이 생기게 하여 복막염과 패혈증을 유발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다. 검찰은 수술을 마친 후 환자가 복통과 흉통을 호소하고 고열에 시달렸으며, 충분히 천공에 의한 복막염을 의심할만한 상황인데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강 전 원장에게 의료과실 혐의를 적용했다. 또한 강 전 원장은 지난해 말, 의료과실 여부와 관련해 의료인들이 함께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일종의 해명자료를 올려 환자의 과거 수술 이력 등을 폭로한 혐의까지 받고 있다. 과거 수술 이력 등을 알리며 환자와 관련된 비밀유지 의무를 위반했기 때문이다.

유사한 내용의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진의 과실로 결론이 내려진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게 사실. 하지만 신해철 사망 사건에 대해서는 의료계 내에서도 '집도의의 과실에 의한 사고로 보인다'는 여론이 형성된 상태라 섣부른 추측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강 전 원장이 강력하게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장기전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중문화계 전반에 뜨거운 추모 열기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신해철의 사망 1주기를 맞아 곳곳에서는 다시 한 번 '가요계 마왕'을 기리는 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먼저 1주기 추모제에는 납골당에 안치된 유골을 야외 안치단으로 옮기는 봉안식이 동반된다. 신해철을 기리기 위해 이곳을 찾아온 팬들까지 함께할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진행된다.

사망 1주기에 맞물려 신해철의 유작앨범도 발매된다. '웰컴 투 리얼 월드'라는 타이틀의 이 앨범은 1년 전 신해철의 사망선고가 내려진 27일에 LP판으로 출시된다. 3천 장 한정판으로 기획됐으며 '길 위에서' '더 늦기 전에' 등 신해철의 기존 곡에 미처 발표하지 못했던 유작 3곡을 추가해 총 40곡으로 구성돼 팬들과 만난다.

생전 신해철이 미친 영향력을 조명한 책 '인간 신해철과 넥스트 시티'도 1주기에 즈음해 출간됐다. 음악 및 문화평론가들이 공동집필했으며 1988년도 대학가요제로 데뷔해 죽음에 이르기까지 26년간의 활동사항을 돌아보고 의미를 알리는 데 집중했다.

방송계에서는 KBS와 JTBC가 각각 '불후의 명곡'과 '히든싱어4'를 통해 신해철을 추모한다. 먼저 '불후의 명곡'에서는 케이윌, 홍경민, 테이, 하동균 등 후배 가수들이 신해철이 남긴 주옥같은 명곡을 재해석해 열창한다. '전설을 노래하다'라는 부제처럼 항상 '전설'에 해당하는 선배 가수가 녹화에 동참해 후배들의 '헌정무대'에 박수를 보내주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전설'이 부재한 상태로 전설을 노래하게 됐다.

'히든싱어4'의 신해철 편 역시 마찬가지다. '원조가수'와 '모창능력자'들의 노래대결을 보여주는 콘셉트이지만 '원조가수'가 없는 상태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앞서 고 김광석 편을 진행해본 노하우를 살려 원곡에서 신해철의 목소리를 분리해 내는 기술을 사용해 모창능력자들과의 경합을 주선했다. 신해철의 유족을 포함해 생전 절친했던 동료가 녹화에 함께해 고인에 대한 추억의 이야기를 나눈다. '불후의 명곡'이 '전설'에 대해 깍듯한 예우를 중요시하듯 '히든싱어' 역시 '원조가수'에 대한 리스펙트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프로그램이라 두 프로그램 모두 신해철의 업적을 조명하며 코끝 찡한 감동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음악계 넘어 대중문화 전반에 영향 미친 인물

신해철이 반 농담 삼아, 한편으로 진지하게 제안해 팬들을 설레게 만들었던 기획이 있다. 이승환, 서태지와 함께 세 명의 뮤지션 합동공연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것. 서명운동까지 마치며 오랜 기간 음악팬들의 '숙원사업'이라 불렸던 프로젝트인데 신해철이 방송에서 추진의사를 밝히며 화제가 됐다. 신해철이 살아 있었다면 합동 콘서트도 성사될 수 있었던 분위기. 그러나 아쉽게도 이 프로젝트는 '팬들의 뜻을 언젠가 들어주겠다'던 신해철에게 미완의 숙제로 남았다.

신해철의 사망 후 한동안 곳곳에서 그의 음악이 울려 퍼질 때였다. 신해철을 그저 기세고 입담 좋은 '아저씨 가수'로 알고 있던 1020세대는 신해철의 젊은 시절 음악을 들으며 새삼 놀랐다는 말을 전하곤 했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올라온 글에서, 그리고 실제로 필자의 주변에 있던 20대들의 반응을 체크한 결과다. 무한궤도 1집에서, 또 여전히 20대에 불과했던 신해철의 초기 앨범을 들은 뒤 그 철학적인 가사와 귀를 어지럽히는 사운드에 탄복했다.

신해철이란 가수가 이런 음악을 하던 사람이었는지 몰랐다는 얘기를 하는 이들이 실제로 많았다. 아이돌 그룹의 홍수 속에서 '공장형 음악'이 쏟아지는 국내 대중음악계의 트렌드가 이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젊은층들은 자연스레 '옛날 가수' 신해철의 음악적 깊이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됐다. 그러다 결국에는 사망사건을 계기로, 비로소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전성기를 이끈 천재 뮤지션의 업적을 되돌아보게 됐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아이러니하고, 또 안타까운 일이다.

말 그대로 신해철은 한국 대중음악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한눈에 들어오는 세련된 외모와 차분하면서도 날카로운 음색을 강렬한 사운드에 실어 흘려보내며 대중에 어필했고, 이후로는 개인의 삶과 사회적 이슈에 대한 가사와 함께 실험적인 음악을 시도해 독보적인 영역을 확보했다. 상대를 도발하는 자유분방한 언행으로 방송의 새로운 형식을 제시하기도 했고 민감한 이슈에 떳떳하게 생각을 밝히며 음악 외 타 분야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종종 지나치게 솔직한 태도와 독설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지만 기존의 가치관을 뒤집고 구속된 영혼을 열린 공간 속에 풀어놓으려 했던 '드리머'가 바로 신해철이었다. 의식불명 상태의 신해철에게 이승환이 전했던 말처럼 '아직 할 일이 많은데' 그렇게도 일찍 가버린 신해철을 추모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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