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10월 21일 오전 9시, 이동을 포기하고 백두산 동북쪽 청산리 백운평 계곡에 진을 친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은 일본군 추격대를 향해 30분간 총탄 세례를 퍼부어 200여 명을 그 자리에 쓰러뜨렸다. 6일간 진행된 청산리대첩의 시작이었다. 다시 김좌진의 부대는 120리 떨어진 천수평으로 밤새 이동했고, 그 사이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은 이도구 완루구에서 일본군 400여 명을 전멸시켰다. 22일 새벽 백운평에서 다시 일본군 기병 1개 중대를 섬멸한 김좌진은 일본군 사단사령부가 어랑촌에 있음을 확인했다.
북로군정서군 600여 명과 대한독립군 1천500여 명은 어랑촌의 유리한 고지에 진용을 폈다. 일본군도 5천 명의 병력을 동원했다. 독립군과 일본군 모두 최대 병력이 투입된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1천200여 명이 사살됐다. 26일 홍범도 부대가 고동하 골짜기 전투에서 마지막 전투를 승리로 장식, 3천 명의 일본군을 섬멸한 청산리대첩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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